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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골」의 외교정책과 미국-정성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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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드·골」장군이 정계에 재등장한 1958년부터 오늘날까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정치 제도에 일어난 중요한 변동은 중·소 분쟁과 미·불 불화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동맹체제 내에 있어서의 갈등이란 이기적인 국가 단위로 구성되어 있는 만큼 자고로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세계정치의 기현상은 종주국 격인 미·소 도전자인 불·중공간의 물질적 군사적 실력차이가 전례 없이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일진영내의 질서유지 역시 전례 없이 어렵다는데 있다.
사실 오늘날의 미·불 관계를 보면 동맹체제 내의 「집안싸움」 이라고 간단히 처리하기에는 너무나 현저한 불화상태를 보이고 있다. 「나토」문제, 구주 통합문제, 대 공산진영과의 관계, 국제 통화제도 개혁문제 등 기본적 국제문제에 있어서 「드·골」의 불란서는 그의 정책을 간단히 검토해봐도 알 수 있듯이 미국의 정책과 위기, 또는 모순 되고있다.
7년 동안「드·골」은 「나토」 소속하의 불군 철퇴, 주요 협의기관에 있어서의 실질적 불참, 주불 미군 기지 철수 문제 제기 등 일련의 「보이코트」 전술을 쓰는 동시에 「케네디」 「맥밀란」의 「바하마스」회담 이후, 미국 측에서 약간의 양보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여하한 형식의 MLF(다변 핵군) 안도 거부하며 독자적 핵 군을 창설 추진하고 있다.
공동시장문제와 구주 통합문제에 대한 「드·골」대통령의 태도 역시 영국 가입거부와 현 공동시장 침체 상태에서 보듯이 그의 대미 정책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서 구라파가 현재와 같이 정치적·군사적으로 미국에 종속된 상태로서는 통합되어서는 안 된다고「드·골」은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즉 「드·골」의 외교정책에 있어서의 최대의 집념은 모든 수단을 다해서 평화공존이라는 이름아래 미·소가 단독타협에 이르는 「얄타의 재판」을 방지하려는데 있다.
따라서 그의 대소정책은 협조와 압력이라는 미묘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소련 지도자들에 대해서는 같은 구주 인이라는 지리적·역사적·문화적 연관성을 강조하여 『대서양으로부터「우랄」에 이르기까지』의 구라파를 이룩해야 한다고 추파를 던지는가하면, 아무리 공산세계라 하더라도「이데올로기」란 국가이익 앞에 무력하여 중·소 결렬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중·소 분쟁을 기화로 소련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동구라파 제국들의 움직임을 적극후원하고 있다. 이처럼 해서 장차 서구와 동구가 접근을 이룰 때 비로소 구라파의 핵심 문제인 독일통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보고 독일 문제의 「구라파 화」를 구상하고있는데 이것은 곧 구라파 문제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감소를 기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드·골」정책의 성패여부를 결정하는 요소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장차 공동시장 국가들이 어느 정도 「드·골」노선을 따를 것이냐, 다시 말하면 구주통합의 성격이 무엇이겠는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드·골」 대통령이 아무리 공동시장에 대한 경제적 의존을 감소하고 동구 「아시아」·「아프리카」·남미 등과의 통상량을 증가하려 해도 통계숫자에 나타난 결과를 보면 오히려 공동시장 치중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그런데 앞으로의 구주통합이 어떤 성격을 가질 것이냐 하는 문제는 미국의 압력(주로 기간산업에 있어서의 미국자본 침투)도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나 무엇보다도 공산진영의 태도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을 것 같다. 공산진영과 서방진영간의 전쟁위험이 실존하는 한 타 공동시장국가들은 물론 불란서 자신도 미국진영에서 탈락 할 수 없을 것이다(「베를린」위기, 「쿠바」 사태에서 보듯이). 미·소간의 냉전은 실은 이 양 대국으로 하여금 각각 자기진영내의 통솔을 용이하게 한 기현상의 일면을 가졌던 것이다.
반대로 전쟁위험이 적으면 적을수록 불란서는 물론 타 공동시장국가들도 대미 의존주의에서 탈피하려는 경향, 즉 「드·골」노선접근경향이 생긴다. 어떤 의미에서는 모든 「드·골」구상은 전쟁위험이 없다는 결론 위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소르본 대학강사·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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