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찾은 들에 올 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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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오늘을 계기로 해서 많은 것이 달라지게 됐다. 우리의 주체성을 살리기 위해서 일어강습소를 단속하고 일어「메뉴」까지 금압하던 것은 어제까지의 일이요, 우리의 주체성을 살리기 위해서 일어를 가르치는 강습소며 대학의 학과를 허가한다는 것이 오늘부터의 현실이다. 우리의 주체성이 칠면조같이 시시각각으로 그 면모를 달리하는 괴물이라서가 아니라, 어제까지의 갖은 무리를 별안간에 유리로 바꿔 치우려는 데서 질이 우습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때를 따라 생각을 고쳐보는 것은 발전의 첫걸음 오늘부터 일어와 일인들과 일본이란 나라에, 대해서 고쳐 생각해야할 점도 많겠지만, 우리 동포에 대한 동포끼리의 생각도 고쳐져야 한다. 오늘로 끝나는 국교 정상화를 향한 오랫동안의 노력은 수많은 동포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혔고, 아직도 배우고 가르치는 본고장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은 젊은이들과 스승들이 있다. 일본에 대한 적의와 회의를 풀어야 한다면 그에 앞서 국사로 해서 상처입고 발이 묶인 동포에 대한 대접도 깨끗이 고쳐져야 하지 않는가
고쳐 생각하기보다는 차라리 더욱 굳게 다짐해야 할 일도 있다. 앞으로의 한·일 국교란 한동안 사이가 벌어졌던 부자지간이 다시 본연의 자세로 회복돼서 이제부터 서로 위하고 서로 희생하는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를 가꾸어 가야 하는 그런 감상적인 물건이 아니라는 것. 한·일 국교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외교의 일반 원리의 예외일순 없다. 이제부터 우리는 서로의 국가이익을 두고 일본과 알몸으로 대결해야 하는 것이다.
일인들이 내세우는 이익과 우리의 그것이 부자간의 그것과 같이 완전히 일치한다고 생각하는지가 있다면 바보가 아니면 철없는「센티멘털리스트」. 빼앗긴 들에 봄은 좀처럼 오지 않았지만 다시 되찾은 들이라고 기다리던 봄이 제 발로 걸어와 주진 않는다. 20년만의 혹한 속에서 맞는 오늘이 봄의 도내를 기약하려면, 휘황한 감상대신에 냉혹한 이성으로 우리의 국가이익을 지켜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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