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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9고지의 개가=청룡부대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월남「퀴논」에서 최규장 특파원-김정남 중령이 지휘한 청룡부대 제3대대의「디엔·칸」지구 작전은 한국군 공격작전으로 두 번째. 대규모로는 첫 전투였다. 미국의 전술공군 기지가 될「나트랑」비행장과 제1번 국도의 안전을 위한 「베트콩」거점 제거작전이었다. 「홈·베이스」인 「캄란」으로부터 서북방 40마일-「베트콩」2개 대대가 진을 치고 수중파괴 능력과 75밀리, 57밀리 무반동포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것.
8일 상오 6시 정각 작전이 개시되자 적은 날쌔게 빼버렸다.
미 야전군 사령부(FFV)소속 「헬리콥터」22대가 동원, 1대에 6명씩의 소총대원이 타고 산 속 깊숙이 날았다. 공격목표 3킬로 지점에 제1파가 착륙-사주 경계에 들어갔다.
흔히 있는「스나이퍼」를 막기 위해 제1파는 산 곡에 매복했다. 관목 덩굴을 쓰러뜨리며 9중대, 10중대, 11중대는 3백 고지까지 전진했다.
첫날공격은 하오5시 「정글」에 갇혀 퇴각하지 않으면 안됐다.
무엇보다도 야간「베이스」를 치기가 어려웠다. 선봉에 섰던 2개중대가 밤 9시까지 철수를 끝냈다. 모기떼가 달려들기 시작, 병사들은 첫 밤부터 잠을 뺏겼다.
모기 약을 군복에까지 바르고 자도 모기떼들은 악착스럽게 엉겨들었다.
달은 밝았다. 3일째 되던 날은 낮 시간을 길게 확보하기 위해 상오 7시 반에 5백 39고지 정상까지 올랐다. 「베트콩」들은 한국 해병대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재 빨리 변장하고 민가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4·2인치 박격포까지「헬리콥터」로 날라 와서 화력은 든든했다. 부상자를 위해서는 「에어·앰뷸런스」가 대기중-「나트랑」에서 식수를 나르기도 했다. TNT 2백 파운드로 1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동굴이 폭파됐다. 불기둥이 치솟았다. 신호탄 발사기와 수류탄 등이 노획됐고 「베트콩」1명의 시체가 보였다. 미처 달아나지 못하고 잡힌 「베트콩」혐의자 26명중엔 여자 3명과 어린이 8명이 끼여 있었다. 군청에서 곧바로 인계해 갔다.
피난민을 수상하게 여긴 끝에 연행하던 헌병이 혐의자를 놓아주자 동서남북에 합장배례하며 『한국 헌병대 무조건 죽인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말했다. 불란서제 수통이며 반합, 지뢰, 「부비·트랩」을 모두 폭파시켜 버렸다. 어느「베트콩」막사엔 ①미군 돌아가라 ②「키」수상 물러가라 ③ 「따이한」도 물러가라고 흑판에 쓰여 있었다.
피묻은 쌀자루와 「호지명·샌들」이 마구 뒹굴었다. 「베트콩」들은 얼마 전까지 군청소재지에 내려와 공공연한 참모회의를 열고 월맹군이 진주할 때까지 방어만 하자고 기염을 토했다는 귀순자의 말. 그들은 추수 때라 옥수수와 벼농사를 거두려던 참이었다. 미월 친선 「마크」가 붙은 양수기가 그들의 수중에서 사용되다 팽개쳐진 모습. 논물 뽑는 「모터」도 노획했다.
정부군이나 미군을 한번도 발디뎌 보지 못하게 하고 농사를 지어왔던 그들이었다. 1주 일째 산에서 먹은 「C레이션」은 맛이 덜했다. 마침 계곡마다 「바나나」가 주렁주렁, 장병들의 요깃거리가 됐다. 밤엔 이슬을 피하기 위해 「바나나」 잎사귀로 움집을 만들기도 했다.
어느 사병은 모기와 불 개미떼를 쫓기 위해 경유를 뿌리고 불을 지르다. 화상을 입는 소동도 있었다. 대대병력이 있으리라 믿었던 「베트콩」거점은 텅텅 비고 1개 소대 가량이 동북부 밀림 속에 엎드려 간간이 난사질을 해왔다. 방탄조끼는 맨 앞줄에 서서 돌진하는 소총 수에게 돌아갔는데 기껏해야 30벌, 무엇보다도 답답한 것은 통신이었다.
중대와 소대를 연결하는 PRC6은 아예 들리지 않아 포기하고 중대-대대를 연락하는 PRC10을 소대로 돌리는 판국이었다. 그나마 모자라 화기중대에서 빌어쓰는 형편. 해병 행대의 L19가 공중에서 통신을 중계-그것도 「베트콩」 저격수가 두려워 저공비행을 할 수 없어 골탕이었다. 36마일까지 「커버」되는 미군들의 「정글」용 가벼운 무전기도 M14 못지 않게 중요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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