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불행한 죽음을 희화화한 진영의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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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이소아
정치부문 기자

“사실이라면 생큐!”

 테러범이나 철천지원수가 죽었다면 모를까. 상식적으로 타인의 사망사고에 대해 할 말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말은 실제다. 2일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보좌관인 이춘상씨의 사고사에 대해 통합진보당의 홍영두 전 부위원장이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성균관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현재 경희대·충북대 외래교수다. 홍씨는 비난이 거세지자 이 글을 삭제했다. 그리고 “1차 속보를 접한 상태에서는 사망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박근혜 후보 유세 수행차량의 사고 자체에 대해 ‘생큐’라고 한 것은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이런 심리를 뭐라고 받아들여야 할까. 내 편, 네 편 나누기에 이골이 난 듯한 심리가 아니면 일반인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반응이다. 네 편의 불행은 내 편의 행복이라는 이분법이 강하게 배어 나오지 않나. 극단적 진영 논리가 무의식 중에 드러난 것 아닌가 싶다.

 그런 의식구조를 보여주는 반응은 홍씨의 트위터뿐이 아니다. 사고 당일 민주통합당 공식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엔 “고 이춘상의 사망은 천운의 경고 메시지. 꼭 정권교체를 이뤄야 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사고는 새누리당에 대한 경고이자 민주당에 대한 하늘의 도움이라는 얘기다.

 이 밖에도 인터넷에는 “보좌관은 박근혜가 죽였다” “구시대 유세 방식을 고집하니까 변을 당하지” 등 박근혜 후보를 비방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반대로 “보수가 더욱 결집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는 비정한 정치공학적 분석도 버젓이 돌아다닌다.

 물론 모두가 다 그런 건 아니다. 실제 민주당 당직자들이 이 보좌관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지 않았나. 인터넷 공간엔 이 보좌관의 죽음을 추모하는 글이 더 많다. 다만 정치적 의도를 갖고 한 가장의 불행한 죽음을 비틀어 해석하는 소수의 비뚤어진 윤리의식이 추모 분위기를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소통이자 통합이라는 데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대선 후보들은 통합을 외치지만, 이런 상태론 누가 당선돼도 통합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멀어 보인다.

 박 후보 측의 사고에 감사한다는 홍영두씨는 2008년 『한국 근현대 윤리사상』이란 책을 펴냈다. 인터넷 서점의 책 소개란엔 ‘한국 근현대 100년간의 역사 속에서 전개되었던 동·서양 윤리 패러다임 간의 갈등, 충돌, 융합에 관한 성찰적 연구’라고 돼 있다.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사고 소식을 접하고, 자기 편이 아니라는 이유로 ‘생큐’라고 하는 건 도대체 어느 시대, 어느 패러다임의 윤리인가. 이에 대한 명쾌한 답변을 해주면 그야말로 ‘생큐’다.

이 소 아 정치부문 기자

※ ‘[취재일기] 불행한 죽음을 희화화한 진영의식’ 관련 기사에서 ‘홍영두 교수는 당시 박근혜 대선 후보의 이춘상 보좌관이 사망한 사고에 대해 “사실이라면 생큐!”라고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확인 결과 홍 교수는 해당 글을 직접 썼던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올린 글을 단순히 매개(리트윗)했던 것으로 밝혀져 이를 바로잡습니다.

홍 교수는 “당시 이 보좌관의 죽음을 알지 못한 상황에서 대선 후보 측의 교통법규 위반 사실에 대한 속보성 글을 리트윗했던 것인데, 이 보좌관의 사망소식을 알자마자 바로 해당 글을 스스로 삭제하고 고인의 명복을 비는 글을 페이스북에 게재했다”며 “많은 사람에게 진의가 다르게 전달된 점이 아쉽다”고 밝혀 왔습니다. 홍 교수의 명예를 훼손하고 정신적 피해를 끼친 데 대해 사과드립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