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박근혜에 미묘한 뉘앙스 담긴 장문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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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후보에 대한 공개 질문장이 노동신문 2일자 대남면 머리기사로 실려 있다. [노동신문 홈페이지]

지난달 말부터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에 대한 비방을 중단한 북한이 1일 박 후보의 대북정책 전환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는 장문의 공개질문장을 냈다.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관영매체를 통해 내놓은 A4용지 3장 분량의 질문장에서 남북 정상회담, 북한 비핵화, 북한 인권법, 5·24 대북 제재조치 등과 관련한 7개 항의 질문을 던졌다.

 조평통은 “(두 차례 남북 정상회담에서 나온 6·15와 10·4) 공동선언을 외면하면서 정상회담을 운운할 체면이 있는가”라고 따져 물었다. 또 “선(先) 핵 포기는 이명박 역도의 비핵 개방 3000과 무엇이 다른가. 이에 대해 박근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며 답변을 요구했다.

 ‘기만적인 대북정책 공약은 누구에게도 통할 수 없다’는 질문장의 제목만 보면 비난 일색인 듯하지만 곳곳에 박 후보를 바라보는 북한의 미묘한 뉘앙스 변화가 담겨 있다. 우선 조평통은 6·15 공동선언 등의 이행을 강조하면서 “아버지인 박정희가 특사를 파견해 도장을 찍은 7·4 공동성명(1972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또 “북남 수뇌분들이 채택한 북남선언을 외면하면서 북남 사이에 무슨 약속을 지킨다는 것인가”라고 했다. 이어 “박근혜도 (6·15 공동선언의) 덕택으로 2002년 평양을 방문해 공동선언을 깍듯이 인정했고, 그 이행을 위해 북남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는 일을 많이 하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질문장에서 조평통은 ‘새누리당 후보 박근혜’란 호칭을 썼다. 정부 당국자는 “박 후보에게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하고 ‘유신공주’라며 유신체제와 박정희 전 대통령을 극렬하게 비난하던 얼마 전과는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며 “박 전 대통령을 ‘북남 수뇌분들’이란 표현에 포함시킨 점도 눈길을 끈다”고 말했다. 지난달 3일 조평통이 “새누리당의 재집권 기도를 절대로 허용치 말아야 하며 대선을 계기로 정권교체를 기어이 실현해야 한다”고 하던 데 비하면 상당히 누그러진 태도다.

 조평통은 또 박 후보에게 “박근혜는 제2의 이명박인가 아닌가”라며 “이제라도 이명박 패당의 대결정책과 결별하고 진짜로 그와 차별화된, 변화된 대북정책 공약을 표명할 의지는 없느냐”고 물었다. 또 “대세를 똑바로 보고 최후의 선택을 바로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은 이 공개질문장을 2일자 노동신문 6면(대남면) 톱기사로 실었다.

 이를 두고 북한이 남한의 대선 판도를 읽어 가며 비난 수위를 조절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의 대남전략가들이 반새누리당 입장을 거둬들인 건 아니다”면서도 “막무가내 식 비난을 퍼붓던 북한이 공개질문장에서 박 후보의 대북정책 변화에 기대를 드러낸 건 의미 있는 대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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