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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픈 성형 공화국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99호 31면

서울 강남의 지하철역이며 버스, 하다못해 텔레비전까지 성형 광고로 가득 차 있다. 성형 우상화 속도에 가속도가 붙은 느낌까지 든다. 모델이며 연예인뿐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성형에 열을 올린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얼굴이며 몸은 마치 영화에 나오는 괴물이나 화성에서 온 외계인처럼 부자연스럽게 보일 때가 많다. 과장된 ‘V라인’이며 심할 정도로 커다란 눈은 절대로 자연스럽지 않다. 그런데도 다들 이 부자연스러움을 원하는 게 유행인 것 같다.

이런 성형 열풍은 날 슬프게 한다. 부자연스러운 성형의 결과만 안타까운 게 아니다. 대다수 사람이 소위 ‘자연 미인’을 지향하는 성형수술을 택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안타깝다. 외적인 것에 집착하는 것은 아시아의 고전적인 생각의 틀과도 맞지 않는다. 아시아에선 예부터 ‘안으로부터의 아름다움’을 강조하지 않았나.

물론 한국만 그런 건 아니다. 외모에 대한 평가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건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병적인 증상이다. 하지만 한국이 조금 더 심한 것 같다. 물론 누구나 매력적인 외모를 원하며, 상대방이 나를 좋아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내 외모를 최고의 상태로 유지하고 싶은 건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하지만 아름다움을 수술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됐다. 쌍꺼풀이 꼭 있어야 하고, 코는 오똑해야 하며, 얼굴은 작아야 하고, 허벅지는 두껍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 그렇지 못하면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게 잘못됐다. 성형외과 광고 모델의 수술 전과 후를 비교하는 사진을 봐도 그렇다. 수술 전의 모습이라면 창피함을 느껴야 한다는 것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요즘 들어선 지하철 타기가 싫어졌다. 사람들로 붐비는 게 싫어서가 아니다. 어딜 봐도 눈에 들어오는 성형외과 광고 때문이다. 비뚤어진 미의 감각을 우상화시키는 광고들이 지하철을 점령했다. 수술로 외적인 아름다움을 쟁취하라는 이미지의 폭력을 피할 수가 없다. 그래서 슬프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름답다는 목소리는 사라져버린 것인지. 연예인 중 성형수술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지. 우리 모두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어져버렸는지. 만약 여러분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목소리 볼륨을 좀 높여줬으면 좋겠다.

여러분의 이모나 고모, 사촌동생이나 직장 동료, 학교 동창, 아니면 혹 여러분 자신도 성형수술을 받은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요즘 한국 사회에선 쌍꺼풀 수술과 코 수술을 받는 것이 심리치료를 받는 것보다 더 쉬운 것 같다.

한국인들은 일정한 틀을 설정하고 그 틀에 자신이 맞지 않으면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갖는 건 아닐까. 그 틀에 자신을 맞추지 않으면 열등감을 갖고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기 때문에 성형수술이 이렇게 유행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일부 부모는 “OO학교에 합격하면 수술비 대줄게”라고 자식들에게 성형수술을 권하기까지 한다고 하니까.

붕어빵 모습의 연예인이며 레이싱 모델과 같은 외모에 집착하는 건 일종의 폭력이다. 이상한 건 우리 스스로에게 이 폭력을 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폭력에 익숙해져 있고, 그 폭력을 위해 많은 돈을 쓴다. 사회병리적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자기 자신에게 자부심을 느끼는 건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엄청난 비용을 내고 수술대에 올라 위험한 수술을 받아야만 가질 수 있는 자부심은 뭔가 잘못됐다. 성형수술은 결국 자기의 몸을 훼손하는 일인데, 그런 끔찍한 일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퍼져 있다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다. 뻔한 말일 수 있겠지만 내적인 아름다움이 중요하다. 우리 모두는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 흔히들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성형수술은 행동에 옮기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



수전 리 맥도널드 미 컬럼비아대에서 정치학 학사를, 하버드대에서 교육심리학 석사를 받았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한국학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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