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검찰총장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정면 충돌한 사상 초유의 ‘검란(檢亂)’은 30일 한상대(사진) 검찰총장의 사퇴 발표로 일단락됐다. 겉으로 보기에 패자(敗者)는 한 총장인 것처럼 보인다. 한 총장은 전날까지만 해도 “검찰 개혁안을 발표한 뒤 대통령의 신임을 묻기 위해 사표를 내겠다”고 말했다. 중수부 폐지를 골자로 하는 자신의 개혁안을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받아들이면 총장직에서 물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계산’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부하 검사들로부터 “물러나라”는 얘기를 들은 검찰총장의 무능한 리더십에 대한 여론이 악화됐다. 청와대 역시 한 총장이 사퇴하지 않을 경우 벌어질 검찰의 내부 갈등을 좌시할 처지가 아니었다.
한 총장 사퇴와는 별개로 검찰 조직 전체는 만신창이가 돼버렸 다. 검찰총장과 총장을 보좌하는 검사들이 서로 치고받는 과정에서 국민들은 대한민국 검찰이 얼마나 문제투성이인지를 분명히 인식하게 됐기 때문이다.
검찰로서 무엇보다 뼈아픈 건 검찰이 이젠 자체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동력을 거의 상실했다는 사실이다. 정치권에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권을 잡는 대로 검찰을 뜯어고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이날 “검찰을 아예 새로 만들겠다는 각오로 개혁하겠다”고 말했다. 박 후보는 “누구보다 깨끗해야 할 검사들이 차명계좌로 돈을 받고 사건 관계인과 부적절한 행동을 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검찰 같은 권력기관이 국민 위에 군림하는 일이 절대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통합당도 김현 대변인 성명을 통해 “ 검찰 수뇌부가 집단 쿠데타로 총장을 쫓아낸 꼴”이라며 “쿠데타 상황을 연출한 검찰 수뇌부는 전원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도대체 검찰은 왜 이 지경이 됐을까. 무엇보다 검찰의 비대한 권력이 원인이란 지적이 많다. 다른 고시(5급 사무관)와 달리 사법시험에 합격하면 바로 3급(부이사관) 처우를 받는데다, 차관급도 정부 부처 중 가장 많은 54명이나 되고, 수사와 기소권을 독점하는 등 막강한 권한을 누리는 게 검찰이다. 그러나 검찰은 지금까지 국민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개혁다운 개혁을 해 본 적이 거의 없다는 비판이 많다. 익명을 요구한 고검장 출신 변호사는 “법원은 10년 전부터 평생법관제나 국민참여재판처럼 권력을 분산하는 제도를 도입했는데 검찰은 한 게 아무것도 없다”고 지적했다. 역대 정권이 너 나 할 것 없이 검찰총장과 핵심 검사들을 정치적 판단에 따라 임명해 온 것도 검찰을 망가뜨리는 중요한 이유였다. 검사들 사이에서는 거의 신망이 없는데 갑자기 요직에 오르고 총장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었다.
또 다른 고검장 출신 변호사는 “법원은 기수(期數) 문화를 깨뜨리고 있는데 검찰은 못 그러고 있다”면서 군대조직 비슷한, 일방적인 지휘문화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정승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무부를 문민화해 검찰과 분리시키고 법무부가 검찰에 대한 감찰권을 직접 행사하는 방식으로 외부 감시를 강화하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