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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만 쳐다본 한 총장 … 친화력 장점 못살려 불만 증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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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9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건물 앞 조형물 ‘진실의 눈’에 비친 대검 청사가 일그러져 있다. 이날 한상대 검찰총장은 30일 검찰 개혁방안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뒤 사표를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도훈 기자]

사상 초유의 검란(檢亂)이 불거진 배경에는 조직 구성원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인의 장막’에 둘러싸인 한상대 검찰총장의 스타일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총장은 ‘조직 장악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으며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지난해 8월 검찰총장에 올랐다. 전국 최대의 일선 수사부서인 서울중앙지검장에서 총장이 된 첫 케이스였다. 친화력이 있어 선후배들의 얘기를 잘 들어준다는 평을 들었다.

그러나 후배 검사들은 “취임 이후 한 총장의 장점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총장이 된 직후부터 ‘불통(不通)’ 총장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그 기조가 1년3개월여 동안 이어지면서 대검 참모들의 의견을 골고루 듣기보다는 측근 인사 위주로 의견을 수렴한 뒤 이를 밀어붙이는 행태를 보였다고 한다.

 한 총장이 검찰의 위기상황이 불거질 때마다 검사들의 고언(苦言)을 흘려 들었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재수사,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의혹 사건 수사 과정에서 후배 검사들이 엄정한 수사와 정치적 중립을 요구했으나 귀담아 듣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두 사건은 부실·편파수사 논란 속에 특검 수사까지 받아야 했다. 최근에는 검찰이 횡렴 혐의로 기소된 SK 최태원 회장에게 징역 4년을 구형한 것을 놓고 ‘검찰총장이 수사팀의 의견을 묵살하고 4년 구형을 고집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런 수사와 관련된 잡음들은 한 총장이 ‘특수수사통’ 검사들과 등을 돌리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진다.

 한 총장은 취임 직후부터 ‘환부만 도려내는 스마트(smart) 수사’를 강조했다. 그러나 이는 일선 수사검사들의 불만을 키운 원인이 됐다.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고 일일이 연결고리를 찾아내야 하는 특수수사의 경우 ‘속전속결’만을 강조하는 한 총장의 스타일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검찰 내부의 주류를 자처하는 ‘특수통’들을 견제하기 위해 특정 학맥을 등용하고 편가르기를 해 내부 갈등을 증폭시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려대 법대 출신인 한 총장은 검찰의 주요 포스트에 대학 동문들을 대거 등용했다. ‘종북좌파 척결’을 강조하며 공안부에도 힘을 실어줬다. 안팎의 원성이 커갔지만 한 총장은 일부 참모들에게 둘러싸여 외부 비판에 귀를 닫았다.

 이런 와중에 ‘9억원 뇌물검사’ ‘성추문 검사’ 사건으로 검찰이 위기상황에 봉착했고 한 총장이 타개책으로 ‘중수부 폐지’ 카드를 들고나오자 검찰 내 특수통 검사들은 물론 대검 참모들조차 “본인이 살기 위해 중수부를 던져서는 안 된다”며 반발했다.

최재경 중수부장 등 특수통 검사들이 “지금 중수부 폐지론을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연구 검토가 필요하다”고 건의했음에도 한 총장은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려 했다. 특히 한 총장이 특수통 검찰인맥의 대표주자인 최 중수부장이 항명을 한다고 오해를 하고 무리하게 감찰을 지시한 것은 부메랑이 됐다.

 대검의 한 간부는 “임기가 계속되면서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자신의 주장은 끝까지 관철시키는 한 총장의 단점이 더욱 도드라지면서 자신의 부하이자 후배인 검사들과의 갈등이 계속 쌓여갔다”며 “내부의 ‘쓴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확고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한 게 지금의 검찰 위기를 자초한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동현·심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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