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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 27억 들여 망댕이요의 모든 것 한자리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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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도예가 김영식씨가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에 새로 지은 ‘망댕이요박물관’의 전시장에서 8대 240년에 걸쳐 이어져 온 조선요의 내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왼쪽 사진은 문경 망댕이요의 모습. [연합뉴스]

“그동안 경제적 여건이 안 돼 미뤄 오던 선친의 유업을 이제야 이루게 됐습니다.”

 경북 문경의 도예가 김영식(43)씨는 사립인 망댕이요박물관 개관을 앞두고 마무리 손질로 바빠졌다. 김씨는 지난해 자신의 요업장이 있는 문경읍 관음리에서 건축을 시작해 지난 9월 내부 공사를 마쳤다. 346㎡(105평)의 박물관 건립에 사비 27억원을 들였다. 김씨는 본명보다 요업장 이름인 ‘조선요(朝鮮窯)’나 8대째 도자기를 빚은 김씨 집안의 장손으로 더 알려져 있다. 그의 숙부인 영남요의 김정옥씨는 중요무형문화재 사기장이고 사촌인 관음요 김선식, 영남요 김경식씨도 모두 문경을 지키는 도예 장인들이다. 다음은 김영식씨와의 일문일답.

 -사재를 들여 박물관은 세운 배경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도자기로 8대를 내려온 집이다. 그런데도 손님이 왔을 때 보여줄 게 없었다. 8대를 잇는 도예가의 장손으로서 망댕이요의 유래와 유물·역사를 한자리에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8대째 내력을 소개한다면.

 “대략 240년 역사다. 8대조는 1700년 말께 충북 단양에서 도자기를 빚기 시작했다. 7대조는 무슨 이유인지 상주 화북에 터를 잡았다. 지금의 문경 관음 지역에서 도자기를 시작한 것은 6대조에 이르러서다. 현재 경북도 민속자료 135호로 지정된 망댕이사기요를 처음 만드신 선조다. 국내에서 유일한 조선시대 가마다. 증조할아버지는 고종 때 경기도 광주의 관요에서 20여 년을 보내고 다시 관음리로 내려왔다. 할아버지는 1973년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고 아버지는 6·25 시기를 거치며 빛을 못 보고 또 일찍 돌아가셨다.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그리움이 크다. 아버지가 못다 이룬 꿈을 박물관을 통해 달래고도 싶다.”

 -망댕이요란.

 “‘댕이’는 덩어리란 뜻이다. 흙을 어른 장딴지 크기인 25㎝ 정도의 역마름모꼴로 둥글게 만든 뒤 돔 식으로 이어 붙인 가마를 말한다.”

 -박물관 전시물은.

 “관음지역에서 출토된 원형이 살아 있는 사발이나 대접·종지·호롱·요강 등의 파편들이 대표적이다. 당시 서민들이 사용하던 그릇 등 생활용품이다. 수년간 수집해 왔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남긴 유품과 도구도 진열된다. 조선요의 계보도 중요하다. 삼촌(김정옥)도 계보에 나온다. 청화백자의 전통을 살려 광주의 관요백자와 청송백자, 문경백자도 한 곳에 모았다. 그동안 직접 수집한 백자다. 옛날 것이 100여 점이고, 제 작품은 수백 점이 선보일 것이다. 많은 사람이 도자기나 망댕이요에 관심을 갖게 하고 싶다.”

 -어떤 도자기가 좋은 도자기인가.

 “종류에 따라 다를 것이다. 우리는 전승작가다. 옛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일이다. 전승 도자기는 최대한 옛날 것에 가까워야 한다. 용문항아리라면 형태나 그림, 색상이 옛날에 최대한 가까워야 한다. 그게 평가 기준이 된다. 대를 잇는 사람은 옛날 용어와 기법을 지켜가야 할 의무가 있다. 그래야만 후손에 전해져 알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박물관은 등록 절차를 거칠 것이다. 학예사를 두는 등록 사립박물관은 지역에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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