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프로·아마 최강전] 학생한테 프로가 당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중앙대 이호현이 28일 인삼공사와의 경기에서 드리블 돌파를 하고 있다. 이호현은 이날 양 팀 통틀어 최다인 35점을 넣었다. [고양=임현동 기자]

‘농구 명문’ 중앙대가 지난 시즌 프로농구 챔피언 KGC인삼공사를 무너뜨렸다. 포워드 전성현(21·3학년)과 가드 이호현(20·2학년)이 주인공이다.

 중앙대는 28일 고양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아마 최강전 1라운드에서 KGC인삼공사에 98-94로 승리했다. 중앙대는 1990년대 농구대잔치 열기를 다시 살리겠다는 취지로 성사된 이번 대회 첫날부터 파란을 일으켰다. 김태술·양희종·이정현 등 주전 선수를 내보내지 않은 인삼공사는 프로 챔피언의 위용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망신을 당했다.

 중앙대는 대학 농구의 명문 팀이다. 허재(KCC 감독)·강동희(동부 감독)·김유택(중앙대 감독)이 활약한 80년대 대학 무대를 평정했다. 최근 프로농구에 새 바람을 일으킨 오세근(인삼공사)·김선형(SK)·함누리(전자랜드)를 앞세워 대학리그 52연승의 신화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10월 4학년 5명이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프로 팀으로 빠져나가 고전이 예상됐다.

 하지만 전성현과 이호현은 선배들이 빠진 공백을 메우고도 남을 만큼 맹활약했다. 둘은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후보 선수였다. 어엿한 주전이 된 이들은 코트를 마음껏 누볐다. “슛은 누구보다 자신 있다”고 한 전성현(33점·5리바운드)이 전반에만 26점을 쏟아 부으며 50-37 리드를 이끌었다. “인삼공사 주전 선수들이 뛰지 않아 편하게 경기에 임했다”는 이호현(35점·9리바운드)은 후반에만 23점을 꽃아 넣었다.

이상범 인삼공사 감독이 28일 중앙대에 패한 뒤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 [고양=임현동 기자]

 김유택(49) 중앙대 감독은 “두 선수가 기대 이상으로 맹활약하면서 이길 수 있었다. 자기 능력의 200%를 발휘했다”며 칭찬했다. 전성현은 “상대팀 주전들이 빠져서인지 경기를 해보니 크게 겁나지 않았다”고 했고, 이호현은 “연습대로 한 게 주효했다”고 승리 소감을 밝혔다.

 올 시즌 프로농구 공동 선두를 달리고 있는 SK도 연세대의 패기에 혼쭐이 났다. SK는 4쿼터 중반까지 끌려 다니다 막판 연세대의 잇따른 실책 덕에 77-69로 역전승했다.

 연세대는 문경은 감독의 모교다. 문 감독이 꼽은 선수 시절 가장 행복한 기억 중 하나도 1993~94시즌 농구대잔치 우승이다. 연세대는 당시 프로 격인 기아자동차·삼성전자·현대전자 등 실업팀을 꺾고 대학팀으로는 처음으로 우승했다.

 이상민·서장훈·우지원·김훈으로 구성된 ‘독수리 5형제’의 맏형이었던 문 감독은 ‘람보 슈터’라는 별명을 얻었고 오빠 부대를 몰고 다녔다.

 문 감독과 연세대의 만남은 여러 면에서 화제였다. 연세대 정재근(43) 감독은 문 감독의 2년 선배이고, 황성인(36) 연세대 코치는 한 달 전까지 SK 전력분석원으로 일해 팀의 장단점을 꿰뚫고 있었다.

 문 감독은 경기 전 “모교와 맞붙는 자체가 부담이다. 대학팀과의 경기라 선수들이 긴장을 놓을까봐 나부터 대충 하지 않았다”며 “정규리그 공동 1위 팀인데 절대 질 수 없다”고 승부욕을 드러냈다. 정 감독도 “부상 선수가 많아 아쉽다. 하지만 선수들에게 ‘즐기러 온 게 아니라 이기러 나온 거니까 모교의 힘을 한번 보여주자’고 얘기했다”고 소개했다.

 한편 허재 KCC 감독의 아들 허웅(19·연세대 1)은 팀 내 최다인 22점을 기록하며 ‘농구대통령’의 DNA를 계승했음을 보여줬다. 허웅은 프로 선배들을 상대로 과감한 돌파와 재치 넘치는 드리블을 선보였다.

고양=이형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