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진영에만 충실한 대통령 후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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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고정애
정치국제부문 차장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첫 TV광고를 보며 떠오른 이는 생뚱맞을 수도 있게 행동경제학자들이었다. 한 명은 대니얼 카너먼으로 그는 “자신에게 익숙하면 좋다고, 또 진실되다고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명은 캐스 선스타인이었다. 그는 “서로 생각이 같은 집단 속에 들어가면 구성원들끼리 ‘반향실(echo chamber)’ 역할을 해서 자기들이 가진 신념이나 우려를 키운다”고 했다.

 연유는 이렇다. TV광고엔 대선 캠프의 역량이 총집중된다. 그중에서도 첫 광고는 개중 제일 낫다고 여기는 거다. 이번에 내놓은 광고가 대표 상품이란 얘기다. 적어도 캠프 내에선 그런 판단을 했다는 뜻이다. 캠프 밖에서도 동의할까. 아쉽게도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박 후보의 TV광고 소재가 된 2006년 5월 20일은 박 후보 스스로 다시 태어났다고 꼽는 날이다. 그날 5㎜만 더 깊게 베었더라면 경동맥을 건드려 3분 내에 즉사할 수도 있었던 테러를 당했다. 양친에 이어 본인까지 험한 일을 겪었으니 주변에선 연민이 흘러넘쳤다. 그런 박 후보가 수술 직후 한 말은 “대전은요?”였다. 이 한마디가 대전시장 선거의 판세를 바꿔놓았고, 당시 여당에 치욕적 패배를 안겼다. 박 후보에게나 박 후보와 가까운 이들에겐 강력한 집단 승리의 기억일 순 있다. 그러나 일반 유권자에겐? 특히나 새누리당과 거리감을 느꼈던 유권자라면? 다른 판단을 할 여지가 있다. 승패가 엇갈린 선거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진 쪽에선 불가항력적인 불행으로 느낄 수도 있었다. 100% 국민 대통합을 말하기 위한 첫 소재론 적합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비지지층의 정서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말이다.

 문 후보의 광고도 유사한 측면이 있다. 서정적 노래, 문 후보의 서민적 풍모를 드러내는 일상, 그리고 서민을 위한 삶에의 다짐…, 야권 진영이 10여 년간 애용했던 플롯이다. 변주를 하긴 했다. 해외 저명 가구디자이너의 안락의자를 등장시키거나 후보의 맨발을 공개했다는 것 말이다. 맨발의 경우 안철수씨가 『안철수의 생각』에서 쓴 이미지이니 아주 새롭다고 하기엔 그렇다. 하여간 이 광고 역시 진보 진영의 문법에만 충실했다.

 이렇듯 내부 논리에만 충실한 자족(自足)적 모습, 광고만의 문제가 아니다. 관성적으로 계속 돼온 일이다. 문 후보는 ‘새 시대를 여는 첫 대통령’을 다짐하면서도 ‘구시대의 막내’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논리와 행동을 그대로 되풀이한다. 서민과 귀족으로, 과거 세력과 미래 세력으로 편가르기를 하고 산업화 세력을 홀대한다. 반성한다는데 자세히 들어보면 결국 “참여정부가 못한 게 없다”는 거다. 박 후보도 ‘콘크리트 지지층’ 밖에선 불통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거세지만 정작 후보는 달라지는 게 없다. 최근 TV토론이 그 예다. 본인이 하고 싶은 얘기만 하고 과거사니, 경제 민주화니 국민 다수가 궁금해 하는 건 묻지도, 답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내부적으론 “잘했다”고 여긴다.

 이런 괴리는 근본적으로 후보 주변이 후보와 같은 생각,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로 채워져서다. 이런 집단에선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이 어리석고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치부되곤 한다. 비판에 귀를 막거나 오히려 역정을 내기도 한다. 행동경제학자들이 말한 인지적 편향 또는 편향 동화다. 박근혜계가 박 후보의 심리를 앞세운 결정을 내리고, 노무현계가 권력 획득에만 능숙한 모습을 보이면서 국민과 멀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선스타인은 그래서 “심의한다고 그 집단이 반드시 진실에 도달하거나 이성적 판단을 할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했다. 의도적으로라도 다양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의 대통령 후보들이 그런 노력을 하는가. 영입한다곤 했다. 하지만 영입 인사들이 의사 결정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한다는 얘기를 듣진 못했다.

 선거는 그나마 정치인들이 개방적인 시기다. 사람에 대해서도, 생각에 대해서도 말이다. 지금도 이러고 있는데 선거 후엔? 탕평인사를 한다는데 과연 지킬까. 차라리 5년 후를 기약하는 게 나을까, 벌써 드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