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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주의의 마술적 변모를 경계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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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민주정치의 요체가 법치주의라는 것은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이다. 인류는 오랜 시일을 두고 민주정치의 가장 좋은 실현방식을 모색하여 왔으며 바로 그 결과가 법치주의의 채택이었다. 이리하여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법치주의를 떠난 민주정치라는 것은 이미 생각할 수조차 없는 논리적인 필연성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민주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법치주의가 현실적으로 민주정치에 배치되는 방향으로 악용되고 있다면 우리는 그 원인을 무엇에 구해야 할 것인가. 진정한 법치정신의 결여, 바로 이것이 그 원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지금 입법·사법·행정의 국정전반에 걸쳐 법치주의의 위기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이리하여 이 나라의 정치현상은 그 민주성 여부에 관해서 마저 재평가를 시급히 요하게 된 것이다.
입법의 권한이 국회에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동시에 국회는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여야 하며 양식을 이탈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 또한 명백하다. 이와 같은 전제조건이 충족되기 전에는 영국에 있어서와 같은「국회만능」을 구가할 하등의 근거도 발견될 수 없는 것이다. 현재 한국 국회의 입법활동을 보면 마치 지각없는 소년이 화약을 걸머지고 대로를 질주하는 것과 같은 인상을 준다. 이와 같은 위험은 민주정치에 대한 하나의 적신호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최고회의 이래 한국의 입법기관은 모든 입법조처를 지나친 자신 속에서 이룩해 놓은 감이 없지 않다.『우리는 어떠한 법률이라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만든 법률만 집행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오만한 심리가 작용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 결과 과오에 찬 무수한 법령들이 나타났다. 정당한 법률의식을 가지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법령, 시대 착오적인 법령, 모순당착을 감출 수 없는 법령, 너무나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불과 수일 내에 개정이 불가피한 법령, 일시적·개별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무정견한 법령, 그 밖의 불합리한 법령들이 허다하게 쏟아져 나왔다.
그 결과 국민들은 법령의 바다 속에서 갈 바를 모르게 되었으며, 나아가서는 법령에 대한 불신의 사조가 일상생활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이른바 법적 안정성의 상실이라고 하는 결론을 가져온 것이다. 법적 안정성의 상실이라고 하는 것은 구체적으로는 사회의 불안을 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법률만 만들면 할 수 있다는 생각, 또 법률에 의해서 하기만 하면 모두 그것이 민주정치라고 하는 생각은 하나의 커다란 착각이 아닐 수 없다. 법률은 합리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합리적인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결코 그 이상일 수도 없는 것이며, 그 이하일 수도 없는 것이다. 입법이라는 것은 마치 마술사의 모자 속에서 비둘기가 나는 것과 같은 기적을 나타낼 수는 없는 것이다.「국가 부강법」이라는 것을 만든다고 이 나라가 하루 이틀 사이에 부강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법질서 확립의 날」을 법률로 제정한다고 해서 이 나라의 법률질서가 만방에 자랑할 정도로 확립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법률을 집행하는 행정부에도 그릇된 법령과신의 풍조가 있다. 결과야 어떻든 행정행위는 법령상의 근거만 있으면 그만이라는 그릇된 생각이 이 나라 공무원들을 극히 위험한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 것 같다. 공무원은 근본적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선을 행할 책무가 있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법령의 구절을 근거 삼아 불선을 행하는 일이 있다면 공무원은 스스로 그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것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이렇듯 법령의 사소한 표현을 빙자하여 무궤도한 행위를 하는 경향이 있는가 하면 전적으로 법령을 무시하는 행위를 하는 사례조차 빈번하다. 이리하여 법령은 마치『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으로 타락하였으며, 나아가 그것은「있으나 마나」라는 조소를 받게까지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국민들로부터 행정관서가 불신을 받게 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뿐만 아니라 그 때문에 국민들이 받는 손실이라는 것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는 것이다.
공무원들이 아직도 이와 같이 미약한 법치의식의 단계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정부는 더욱 더 많은 행정권력을 장악하고자 열심인 것 같다. 물론 행정권력의 집중이 절실히 요구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전제로서 공무원들이 철저한 법치의식과 충성스러운 공복의식을 터득하기 전에는 심히 위험한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날로 심해가기만 하는 공무원의 부정부패가 전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이들에게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한다는 것은 과연 현명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의 삼부를 비교하여 논할 때, 그래도 종래 가장 염직의 영예를 누린 것은 사법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5·16이후 사법부에도 파급된「세대교체」의 폭풍은 무엇을 가져왔던가. 국민들은 지금 사법부에 대해서도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한 것 같다. 이것은 중대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민들에게 마지막으로 시비곡절을 가려줄 사법부조차가 신뢰의 도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참으로 문제는 심각하다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법부에 대한 의혹현상이 과연「세대교체」의 결과라고만 할 수 있는 것인지는 물론 의문이다. 그러나 다만「세대교체」와 때를 같이 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원래 재판이라는 것은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것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패자의 불평이 사법부에 대한 불만과 직결 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법부에 대한 의혹의 경향이 전적으로 신빙성 있는 것은 아니나 그래도「세대교체」로 각광을 띠고 나타난 젊은 사법관들의 더 한층의 분발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간혹 역사적인 필연성으로 말미암아 입법·행정에는 혁명적인 조처가 나타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법에는 혁명적 현상이 나타날 수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미 혁명은 지났다. 민정의 오늘날 재판이 독립성을 포기하고 정치적 고처와 연결될 수는 없다는 것도 참고삼아 명심해야 될 문제가 아닐까 생각된다.
우리의 결론은 간단하다. 본질적으로 민주정치의 구현이라고 하는 신성한 목적을 가진 법치주의가 어느 사이에 마술적인 변모를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되겠다는 것이다. 모든 정치인, 모든 공무원, 아니 모든 국민은 왜곡된 법치주의를 엄중히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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