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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청의 대한 정략과 필서 「이서황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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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국과 미국 두 나라가 국교를 맺은지 이미 만83년-그동안 파란곡절도 상당했으나 이제는 누가 보든지 떨어질 수 없는 「동맹」으로 굳어지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두나라가 애당초 결연하게된 모습을 살펴보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동양식의 중매 결연 임에 틀림이 없었다. 한국 측으로 보면 짝사랑해오는 미국을 마다고 한 적도 있었는데 청 제국이라는 큼직한 중매의 힘으로 사전에 선도 못보고 초례청에서는 직접 말도 못해보고 우호 통상의 인연을 맺게 되었으니 말이다. 여기에 필자는 이즈음 「장수 무대」라는데서 80내외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명랑하게 웃어가며 그 옛날 중매 결혼하던 회고담의 방송을 들어가며 이 글을 엮어본다.

<우호 조약 체결하라 미 상원, 정부에 요구>
동방의 미개발 처녀국인 조선 왕국의 문호를 개방시키기 위하여 먼저 힘의 접촉을 시도한 것은 1866년의 「병인양요」를 도발한 불 제국이었고 다음에는 1871년의 「행미양요」를 도발한 미국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막상 그 문제를 개방시키기에 성공한 것은 1876년에 내자 수호 조약을 체결한 일본이었으니 저러한 구미 국가들이 새삼 부러워하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여기에 1878년 미국 상원에서는 해군 위원장 「사젠트」 의원이 한 결의안을 제출하여 대통령 「헤이스」에게 다음과 같이 요구하기도 하였다.
『미국은 대표위원을 임명 파견하는 동시에 평화로운 수단과 일본 정부의 우호적인 지원을 받아 한국과 더불어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하도록 노력하라』
따라서 미국 정부는 1879년에 군함 「티코데로가」호로 세계 조항에 오르는 「슈펠트」 해군 제독에게 명령하되 『될 수 있는 대로 한국을 방문하여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하도록 진력하라』고 하였다.
이와 동시에 국무성은 저희 주일 공사 「빙감」을 거쳐 일본 외상 정상형에게 「슈펠트」제독이 그의 사명을 잘 완수하도록 조선 왕국에 알선해 달라고 부탁도 해두었다.

<국호 「코리아」로 말썽|슈펠트, 청에 거중 요청>
이같이 하여 「슈펠트」 제독은 「아프리카」를 돌고 일본 장기권에 들렀다가 1880년3월 우리 부산항에 도착한바 믿고 왔던 일본 정부의 알선이 매우 무성의한데, 미국 정부가 이 나라에 보내온 공한 중의 국호까지 조선국 아닌 고려=Korea로 되었기 때문에 문서의 접수조차 말썽이 생겨 설왕설래하는 동안 40여일을 허송세월하고 말았다. 이에 미국 정부와 「슈펠트」 제독은 그토록 기대했던 일본 정부의 알선을 단념하고 천진으로 북양대신 이홍장을 찾아 청국 정부의 알선을 의뢰하게된바 그들의 태도는 의외에도 친절하여 모든 교섭이 비로소 활발하게 추진되었다. 다름 아니요 이 당시 청국 측의 대한 정략을 들추어보면 그들은 이미 병자 한·일 교섭 당시의 불간섭 태도를 지양하고 새삼 활발해진 일제 세력의 대한진출을 견제하기 위하여 이른바 「이이제이」의 외교 정략에서 태서제국에도 문호를 개방하라고 이모저모 이 나라에 권고하기도 서슴지 않았던 때문이니 다음에 그 경위를 좀더 밝혀 보기로 하자.

<일의 팽창 두려운 이홍장 앞장서 「이이제이」 권고>
돌이켜보면 1876년의 대일 수호 조약을 체결하여 어설프게도 문호만을 개방해 놓고, 저들의 계속되는 여러 가지 요구 조건에 새삼 골머리를 앓게된 것이 그날의 조선 왕국이었던가 하면, 신흥 제국주의 일본국이 앞서는 대만을 징벌하고, 다시 유구 왕국을 병탄한 다음 이제는 한반도까지도 독점 지배코자 덤벼드는 그 모습을 그대로 수수방관만 할 수 없게 된 것이 중원 대륙의 청 제국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미 청국 정부는 북양대신 이홍장으로 하여금 1879년7월 요지 다음과 같은 필서를 이 나라의 원임대신 이유원에게 보내어 구미 제국과의 수호 통상을 권고한 적이 있었다.
일본이 널리 서양인을 초빙하여 수륙 병법을 교련하고 있으니 비록 서양인만은 못하나 귀국으로서는 당적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만일에라도 일본이 영·법·미 등의 여러 나라와 결탁하여 개항의 이로 꾀고 혹은 북의 아나사와 합작하여 척토의 모로 인수하게 된다면 귀국은 즉 성세가 고립되고 따라서 우환이 커질 것이니 금일의 계책은 마땅히 이독공독하고 이적제적 해야만 될 것이라 기회 있는 대로 태서제국과 더불어 입약한 다음 그 힘을 빌어 일본을 견제하라. 이제 만약 귀국이 재빨리 영·덕·법·미 같은 나라로 더불어 통상 수교 하게 된다면 비단 일본을 견제할 수 있을 뿐 아니요, 아인의 규시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내용의 필서를 가리켜 흔히 「이서」라고도 일컫게 된 것이니 이「이서」를 받게 된 때부터 이 나라 정부는 비로소 서양 제국과의 수교는 물론이오 목전에 청탁해온 미국과의 수호 통상을 우선 재검토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직도 유예미결이어서 l880년6월 일본으로 파견되는 수신사 김홍집 편에 미국 정부가 보내온 국서를 반환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때 일본 정부 상대로 인천 개항 문제와 관세 개정 등의 여러 가지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파견된 수신사 김홍집은 결국 당초의 사명은 하나도 달성 못하고 동경에 체재하는 동안 주일 청국 공사관의 삼부관인 황준헌으로부터 이 나라의 당면 외교 문제를 위해 쓰여진 「사의조선책략」이라는 소책자 한권을 받아 가지고 귀국하여 국왕께 바치게 되었으니 그 요지를 간단히 살펴보면

<첫째>조선국 오늘의 급무는 아나사를 방어하는 이상 급한 것이 없다 하고

<둘째>그 대책으로 친 중국하며 결 일본하고 연 미국하라고 주장하였다.

<세째>미국이라는 나라를 소개하되 본시 영국의 속영으로 백년 전에 독립한 나라인바 민주지국으로 공화위정하여 남의 강토를 탐내지 않고 약소국을 잘 원조하는 터이라 이미 뜻 있어 귀국에 접근코자하니 이끌어 우방을 삼게 되면 가이결원 할 수 있고 가이서화할 수도 있으리라고 극구 찬양하였다.

<「이서황책」에 움직여|한미간에 「청실홍실」>
이상의 책략을 가리켜 「황책」이라고도 일컫게 된바 전개한 「이서」와 아울러 「황책」은 좀더 연미설을 강조한 것이라 국왕 이하 정부의 중신들도 이제는 이서황책을 독본 삼아 외며 우선 미국과의 결연을 사양치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 아직도 수줍어 자진해서는 손 내밀지 못하는 것이 이 나라이기도 한데 때마침 미사 「슈펠트」가 이홍장에게 청탁하여 다시금 중당대인의 권유가 오게 되니 어찌 또 마다고만 할 수 있을 것이냐. 여기에 은근히 치사하며 계속해서 잘 중개해 달라는 밀사가 「워싱턴」아닌 천진과 서울 사이를 오가게 되었으니 정녕 한·미 양국을 맺는 청실이오 홍실이기도 하였다. 【차회는 김윤식·슈펠트의 간접 교섭과 조약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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