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정치 지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겨우 진통이 가라 앉기는 했어도 소산이 없었던 정치의 곡절-. 그러나 여기에도 파문만은 정치의 두터운 지층 속으로 번져나가 정치를 외면하는 풍조가 나타나기 조차하고 있다. 늘 정치의 후방이 되어 온 지방의 주권자들은 이런 중앙정국의 영향을 그래도 또박또박 받고 있다. 여기에 싣는 것은 본사 정치부기자들이 각 지방으로 다니면서 들은 서울밖의 정치분류의 소리이다.

<영남>
오곡백과가 풍요한 가을. 농촌의 생명인 벼이삭은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고 시냇가 마을의 지붕위에는 탐스럽게 자란 박들이 따사로운 가을 햇볕을 받으며 뒹굴고 있다. 그러나 농촌은 중앙정계에서 [파노라마]처럼 일어나고 있는 정치정세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거들어 보지 않기 때문에 「정치의 불모지대」에 있는 느낌을 준다. 한 마디로 말해서 농어촌은 가까우면서도 먼 중앙정계와는 수리상태 속에 잠들고 있는 것 같다. 부산·대구· 마산등 영남지방의 중소도시는 그와 같은 정치감각과는 다르지만…. 그래서 그네들은 우리나라를 「서울 민국」이라고 비유하기까지 했다.
정치인에 대한 불신·환멸등이 왜 치솟아 오를까. 농어촌지방이 정치에서 소외되고 있다고 해서 잠들고만 있다고 볼 수 있을까. 공화당이 한·일 협정을 통과시키기 위해 일당국회를 빚어낸 사태를 비롯해 야당분열 위기, 학생「데모」진압을 위한 정부 초강경책등 일련의 사퇴를 비극적인 정치현실로 보고 거의 체념하는 눈치이다. 그네들은 야당의 분열을 더 증오했다.
『야당이 한 뭉치로 통합될 때의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은 더 크지요. 한·일 협정을 반대한다고 공약했으면 끝까지 싸워야 할게 아닙니까. 정치인들의 공약을 믿을 수 없어요. 게구멍에 들락날락하는 게처럼(야당의 원내복귀를 가리킴) 눈치만 살피는 정치인은 믿을 수 없어요』라고 한 노인(경남 합천군 삼가면)은 정치인 불신의 요인을 드러냈다. 정치인들은 백성을 깨우쳐 주지 않고 희롱하고 있으며 배신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치현실이 기대할 것이 없다고 해서 무중력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백성은 잠들고 있는 것 같지만 지켜보고 있다』고 한결같이 말하고 있다. 그네들은 혼돈한 정국의 궁극적인 책임은 집권자에게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인·정치인에 대한「테러」사건에 대한 관심은 날카롭다. 뿌리를 뽑지 않고서는 공포정치의 인상을 남겨줄 것이라고 걱정했다. <대구= 본사 서정강기자>

<호남>
『세상을 어떻게 봐야 옳은지 모르겠다』는「방향감각 상실증세」를 많은 사람들 한테서 엿볼 수 있다.
지식의 상하를 막론하고 이런 방향감각 상실증세를 입버릇 처럼 나타내는 데는『여당이고 야당이고 모두 나쁘다』는「여야불신론」이 선거민들의 마음속에서 큰 비중으로 작용하기 때문인 것 같다.
목포 N수산에 소속한 한 어부는『정치하는 어르신들깨서 이 바다처럼 속이 확 트이지 않아 늘 싸우는게 아니냐』고 한다. 그런가 하면 광주에서 만난 L변호사는 정부와 여당에 대해『강자로서의 아량을 베풀어야 한다』면서 강자의 아량은 곧 승리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또 학생들의 「데모」를 막다가 군인들이 학원에 마구 뛰어든 것은 동기야 어떻든 「감정」이 앞서 빚어낸 불행한 사태라고 규정지었다. 『젊은 혈기에 그런 일들을 저질렀겠지만 이 기회에 군인이 정치에 끼어들게 되는 일은 고쳐져야 한다』고 L변호사는 열을 올린다. 감정을 누르고 아량 보이는 것이 어지러운 정국을 바로잡는 전제조건이라는 결론들이다.
그러나 야당의 자세에 대해서도「주권자의 눈」은 여당에 못지 않게 비판적이다.『국민들이 언제 야당더러 국회의원을 그만두라고 했습니까? 자기들이 약속해 놓고는 이러쿵 저러쿵 하고 있으니… 약속했으면 물러나고 그렇지 않거든 들어갈 것이지….』
전주서 잡화상을 하는 50대 중년의 얘기. 더구나 야당이 제구실을 못하기 때문에 학생들이「데모」를 했다는 비약적(?)인 논리를 펴는 이도 있다.
야당의 이런 불구자적 처신 때문에 학생들의「데모」는 순수한 애국심에 의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그러나 과잉발산은 삼가야한다는 의견이 많다. <전주=본사 윤기병기자>

<중부>
민심은 다투는 것뿐인 여와 야의 관계를 싫어한다.『어째서 원수처럼 싸우기만 합니까』춘천시내 한「택시」운전사의 말이나『이해와 타협이 있는 정치가 아쉽다』는 한 고교교사의 말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그 책임은 공화당에 더 따진다.『아무리 수가 많다해도 저희들 마음대로 하는 법이 있습니까. 오죽 했으면 사표를 냈겠습니까』야당의 의회포기를 따지기 전에 의원직을 내던진 심경을 동정적으로 본다.『공화당에 몰리면서도 당내 파쟁은 더심 해지니 한심해요』(어느 여교사의 말)하며….
야당 파쟁은 동정을 이해로까지 끌어가지 못했다.『일당국회는 없는거나 만찬가지』라는 데는 모두가 의견이 같다.
그러면서도 야당의 국회복귀에는 판단이 엇갈렸다. 어떤 회사원의 말처럼 『들어가야지요. 애초 나온 것이 잘못입니다』중류지식층의 상당수는 의회포기 자체를 나무란다.『소수주장은 숫제 듣지 않으니까 나온 것 아닙니까. 이제부터는 듣는 답니까. 나온 것으로 깨끗이 물러서야지…』야당의 변덕을 호되게 욱박지른 층도 만만치 않다.
시민들은 학생 「데모」에 손뼉을 치지 않으면서도 정부의 강경책을 더 나무란다.『학생들도 현실참여에서 생각해야 할 점이 있지만 정부가 마구 누르는 것만으로 근본적인 해결이 됩니까』학생「데모」를 말리느라고 애썼다는 고교교사의 말이다.
『민심이 천심인데 정부가 누른다고 해서 가라앉습니까』40대 가정주부의 소박한 논리도 있다.
『우리가 뭘 압니까. 어떻게 되어가지요? 서울의 대학들도 조용하다던데…』으레 이렇게 반문하는 것으로 말을 맺는 시민들의 소망은 안정으로 향해있다. <춘천=본사 이영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