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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묻지마 입법들 … 국회가 제정신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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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금 대선보다 여의도 국회가 더 문제다. 이익집단과 지역구민에게 휘둘려 말도 안 되는 선심성 법안들이 무더기로 쏟아지고 있다. 차분한 공론을 통해 풀어나가도 모자랄 민감한 법률 개정안들이 어수선한 대선 정국을 틈타 날림으로 통과되기 시작했다. 지난 15일 국회 국토해양위원회는 택시를 대중교통수단에 포함시키는 대중교통법 개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아직 도로교통법이 남아 있어 당장 택시가 버스 전용차로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택시 문제는 선거 때마다 무분별하게 증차를 허용해온 정치권이 주범이다. 택시업계의 경영난도 요금 인상과 택시 감축으로 풀어야지, 무턱대고 혈세를 퍼붓겠다는 논리는 이해할 수 없다.

 국방위가 통과시킨 ‘군 공항 이전법’도 마찬가지다. 공항 주변 주민들의 소음 피해와 재산권 침해 고통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해당 지자체가 이전을 요구한다고 군 당국이 대체 부지를 찾는 게 가능하리라 보는가. 군 공항 하나에 661만여㎡(약 200만 평) 이상의 부지와 3조원 넘는 돈이 들어간다. 또한 군 공항에 이어 언제 사격훈련장이나 군 부대까지 옮기라는 요구가 빗발칠지 모른다. 제주 해군기지 공사에 온 나라가 홍역을 앓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국가 안보와 현실을 도외시한 채 지역구 표만 의식한 ‘묻지마 입법’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우리는 지식경제위가 통과시킨 유통산업발전법의 문제점을 이미 지적한 바 있다. 국회가 자의적으로 정부·상인단체·대형유통업체들이 머리를 맞대고 합의한 상생협력 방안을 하루아침에 휴지 조각으로 만들었다. 입법부의 횡포라 할 수밖에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현재 국회에는 무시무시한 의원입법안들이 계류돼 있다. 도청 이전 비용을 국민 세금으로 부담하라는 도청이전법, 국도 관리 책임을 중앙정부에 떠넘기는 도로법 등이 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모두 수조원씩 혈세를 쏟아부어야 할 내용들이다.

 입법부의 권력은 엄청나게 막강하다. 그만큼 신중하게 행사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마구잡이로 퍼주기 입법안들이 쏟아진 적이 없다. 포퓰리즘 입법은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택시업계가 자신들의 편을 드는 대선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겠다고 하자 여야가 만장일치로 대중교통법을 통과시켰다. 선심성 입법은 지위 고하를 가리지 않는다. 국회 의장단과 정당 대표들까지 포퓰리즘 입법 대열에 가세하고 있다. 과연 국회가 제정신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오죽하면 김황식 총리마저 “원칙에 어긋나거나 재정에 과도한 부담을 주는 법안이 많아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했을까. 하지만 이대로 국회의 일방적인 폭주(暴走)를 지켜볼 수 없다. 정부는 법안 심의과정에 적극 대응해 입법부를 견제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국회의 균형 감각이다. 오늘부터 열리는 국회 법사위가 문제 법안들은 과감히 폐기하는 결단을 내려주길 바란다. 또한 여야 지도부는 머리를 맞대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최후의 자정 기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19대 국회가 출범 첫해에 이렇게 입법권을 마구잡이로 휘두른다면 우리나라의 앞날은 캄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