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BIZ] 왕년의 스튜어디스 CEO되어 업계 누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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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7면

몸에 밴 친절과 미소, 뛰어난 화술을 갈고 닦은 전직 여승무원들이 경영 일선을 누비고 있다.

대한항공 전직 여승무원들의 모임인 카사(KASA) 회원 5백명 가운데 20%가 비즈니스 우먼으로 활동하고 있을 정도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스튜어디스는 여대생에게 최고의 직업으로 꼽혔다. 입사는 여섯번의 시험을 거쳐 수십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했다. 상당수가 소위 명문대 출신들이었다.

그러나 결혼만 하면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퇴사, 10년 이상 경력을 쌓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이들 가운데 대표적인 기업인으로는 국내 유명 헤드헌터 회사인 유니코서치의 유순신(45)사장이 꼽힌다.

78년에 입사,3년간 스튜어디스로 일한 그는 "스튜어디스 시절 익힌 매너와 어학 실력이 기업인으로 변신하는 데 큰 힘이 됐다"며 "특히 정확한 시간관리와 12시간 비행을 하면서 익힌 긴장감과 지구력이 남다른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유사장은 올 상반기부터는 성신여대 겸임교수로 '직업과 진로탐색'에 대한 강의도 맡고 있다.

취업을 준비하는 여대생들에게 그는 "전문성이 가장 중요하다"며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지 고민하며 늘 자신을 갈고 닦으면 일자리는 항상 열려 있다"고 조언했다.

미국 유명 골프채를 수입하는 토미아머코리아의 김정희(56)사장은 대한항공 스튜어디스 공채 1기다. 69년 고(故) 조중훈 대한항공 회장이 당시 정부 소유의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한 뒤 20여명의 스튜어디스를 뽑았을 때 입사했다.

3년간 비행기를 탄 金사장은 여승무원 시절 때 골프를 배웠는데 이게 인연이 돼 89년부터 골프용품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70년대 초만 해도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은 대부분 귀빈(VIP)이었다"며 "이때 VIP에 대한 접대 능력을 키운 게 사업에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고객이 곧 VIP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한국프로토콜스쿨의 서자원(48)사장은 손꼽히는 글로벌 매너.예절 교육 강사다.

그는 결혼 후 아이를 낳고도 스튜어디스 생활을 계속한 첫 여승무원으로도 유명하다. 10년간의 여승무원 경력을 바탕으로 7년간 대한항공 교육훈련팀에서 일해 오다 93년 창업했다.

주 3일 과정으로 하루 8시간씩 글로벌 에티켓과 매너.테이블.용모.이미지 메이킹.대화 기술 등을 주로 강의한다.

그의 학원을 거쳐간 교육생이 5만명을 넘는다. 지난해만 1만명을 교육시켰다. 서울대학병원을 시작으로 삼성.LG.SK.포스코 등 대기업뿐 아니라 법무연수원 등 공무원, 은행.증권회사 등 금융계 임직원들의 글로벌 에티켓과 매너 교육까지 담당했다.

승무원 경력 2년의 이숙(48)사장은 93년부터 보석 가공업에 뛰어 들어 97년 강남구 신사동에 재미니스 보석상과 가공 공장을 차렸다. 주로 수천만원 이상하는 고가 보석을 취급한다. 승무원 시절 알았던 유명 인사들이 단골이다.

그는 "결혼 때문에 여승무원을 그만둬야 하는 당시 상황이 무척 아쉬웠다"며 "스튜어디스 시절에 '민간 외교사절단'이라는 강한 긍지를 심어준 교육이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국민대학교 부설 미용예술 아카데미의 학과장을 맡고 있는 강경숙(54)씨는 여승무원 모델 출신이다. 1년간 승무원 생활 후 미국으로 유학, 미용 전문가로 변신했다.

그는 "입사 첫해인 70년 강릉행 대한항공기(YS11기)가 납북되자 승무원들을 석방하기 위해 세계 22여개국을 누볐던 사절단 시절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회고했다.

김태진 기자

<사진설명>

대한항공 스튜어디스 출신 기업인들이 서울 중구 대한항공 서소문 빌딩에 모였다. 좌로부터 유니코서치 유순신 사장,한국프로토콜스쿨 서자원 사장, 토미아머코리아 김정희 사장, 미용예술 아카데미 강경숙 학과장, 재미니스 이숙 사장. [김성룡 기자]

<바로잡습니다>
◇1월 9일자 E17면 '하늘 누비던 왕년의 스튜어디스' 기사 중 미용예술 아카데미 '강경숙' 학과장을 '강형숙'으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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