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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재발견] 두드리고 춤추며 … 잔치 같은 ‘마을굿’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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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용문동 남이장군사당에서 마을의 평온을 기원하는 ‘남이장군사당굿’이 열렸다. 매년 음력 10월 1일이면 서울 시내 20여 곳에서 마을굿이 일제히 펼쳐진다. [박종근 기자]

아침 수은주가 0도까지 떨어진 14일 아침 서울 용산구 용문동의 남이장군사당에 주민 수십 명이 모였다. 일 년에 한 번, 매년 음력 10월 1일 열리는 마을굿인 ‘남이장군사당굿’을 보기 위해서다.

 인사말 등 사전 행사가 끝난 오후 1시, “어이야~!” 우렁찬 목청이 울려 퍼지고 빨강·노랑·파랑의 알록달록한 옷자락을 펄럭이며 무녀(巫女)가 등장했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0호 ‘남이장군사당굿’ 예능보유자 이명옥(74) 명인이다. 장구·피리·해금 소리가 울려 퍼지는 속에 주민들이 연신 두 손을 비벼대며 소원을 빌었다. 이 명인은 “아들딸 장성하고 가정 편안하게 해주시고…”라며 주문을 외워 갔다. 주민 장정수(59·여)씨는 “오늘 좋은 기운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내년 한 해는 좋은 일만 가득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음력 10월 1일인 이날 서울시내 20여 곳에서 일제히 굿판이 벌어졌다. 오문선 서울시 문화재과 학예연구사는 “예부터 음력 10월은 상달(上月)이라고 해서 한 해 농사를 마친 뒤 가장 귀한 달로 여겼다”며 “그중에서도 첫날을 가장 높이 쳐 햇곡식을 바치고 마을의 평안을 비는 굿을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영등포구 당산동의 ‘당산동 부군당’에서도 무녀 서정자(75)씨가 마을굿을 치렀다. 그는 이 동네 마을굿을 60년 동안 전담해 왔다. 60~70대 주민 10여 명과 종교학 전공생 20여 명이 자리를 차지했다. 가톨릭대 종교학과 박일영 교수는 “한국의 전통 종교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우리 문화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무속신앙’을 알 필요가 있어 왔다”고 말했다.

 마을굿은 마을에 있는 부군당(府君堂)이나 도당(都堂) 같은 공간에서 이뤄진다. 이곳에는 남이·김유신·단군·공민왕·이성계·제갈공명 등 역사적 인물을 주신으로, 최영·이순신·관우 등 장군신 계통을 부속신으로 모시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이런 인물이 마을과 관련 있다고 믿고 그들에게 마을의 안녕을 비는 것이다.

 첨단 정보기술(IT) 시대에 서울 한복판에서 아직도 마을굿이 사라지지 않은 이유는 뭘까. 박흥주 굿연구소장은 “1970~80년대 상경한 지방 출신들을 한데 묶어 주던 것이 마을굿이었다”며 “이제는 종교적 의미보다는 전통문화재의 성격이 강하다”고 말했다.

 굿 비용을 지원하는 구청이 일부 있지만 아직도 대부분 마을굿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비용을 댄다. 서울시는 이 가운데 보존가치가 높은 마을굿 5개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용문동 남이장군사당굿, 행당동 아기씨당굿, 밤섬 부군당굿, 봉화산 도당굿, 우이동 도당제 등이다.

 김선풍 중앙대 민속학과 명예교수는 “음악과 춤이 마을굿의 중요한 요소인 만큼 굿에 대한 종교적 선입견만 없애면 마을제사를 축제로 키운 일본의 ‘마쓰리’ 못지않은 한국의 관광자원으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최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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