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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경제] 왜 정제된 희발유가 원유보다 싸졌나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4일 SK(주)등 국내 정유사들은 휘발유(가솔린)값을 ℓ당 30원(약 3%)씩 내렸습니다. 경유(디젤)와 등유값은 ℓ당 40원 정도씩 인하했어요. 자동차에 기름을 채워야 하는 운전자들이나 등유를 연료로 때는 가정.기업에는 반가운 일이지요.

석유값이 내리면 운전자들은 그만큼 돈을 다른 데 쓸 수 있어 소비가 늘어나고, 항공.해운사는 운송비용을 줄이게 되며 석유화학 회사는 원재료 값 부담이 줄어 이익이 늘어납니다.

반면에 1970년대의 1, 2차 오일쇼크 때처럼 석유값이 갑자기 오르면 물가는 치솟고 경제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석유류 값은 경제 성장의 윤활유가 되기도 하고, 경제에 먹구름을 몰고 오기도 하는 경제의 주요한 변수입니다. 그러면 이런 기름값은 어떻게 결정될까요□

석유류 가격은 기본적으로 필요한 양(수요)과 생산되는 양(공급)의 차이에 의해 좌우됩니다. 국제적으로 석유가 모자라면 값이 오르고, 남아 돌면 값이 떨어지는 것이지요.

중동 지역 산유국 간의 분쟁이나, 자연 재해.이상 기후가 발생하는 경우에도 값이 달라지지요. 또 가끔 보도되는 정유공장의 화재나 원유를 운반하는 유조선의 충돌 사고, 미국 등 석유를 많이 쓰는 나라들의 에너지 정책 등도 국제적인 석유류 가격에 영향을 미칩니다.

국제 원유값은 올 초만 하더라도 배럴(약 1백59리터)당 30달러 선을 유지했지만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소비가 줄면서 최근에는 배럴 당 22달러 선까지 떨어졌습니다.

특히 국제적으로 휘발유가 남아 돌면서 휘발유 값이 원유 가격보다도 더 밑으로 떨어지는 기현상이 3개월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유사들은 원유를 정제해 휘발유를 만드는데, 정제할 때 드는 비용도 건지지 못하는 셈입니다.

중동산 원유를 대표하는 두바이 원유의 7월 평균 가격은 배럴당 23.44달러였으나 휘발유의 싱가포르 현물시장 가격은 배럴당 22.51달러에 불과했습니다.

이처럼 휘발유값이 떨어진 것은 세계 최대 소비처인 미국의 휘발유 소비가 줄면서 재고가 쌓였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주로 미국으로 흘러 갔던 중국산 휘발유가 싱가포르 현물시장으로 대량 쏟아져 나와 휘발유 값이 폭락한 것입니다.

휘발유 같은 석유 제품은 조금이라도 모자라면 공장이나 발전소 등을 가동할 수 없기 때문에 값이 가파르게 오르고, 적정한 재고 수준 이상이 되면 저장할 공간이 없는 문제 때문에 값이 뚝 떨어지는 특성이 있답니다.

국제유가가 떨어지자 원유를 수출하는 나라들 모임인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추가 하락을 막기 위해 오는 9월 1일부터 생산량을 하루 1백만 배럴씩 줄인다고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산 감축도 경기 침체에 따른 소비둔화를 커버할 수 없어 유가는 더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그러면 국내 유가는 어떻게 결정될까요? 기본적으로는 국제 유가와 오르 내림을 같이하지만 환율이란 변수때문에 세부적으로는 약간 달라집니다.

국내 정유업체들은 외국에서 원유를 사온 뒤 이를 정제해서 휘발유 등을 만들어 파는데, 사올 때는 달러를 주고 사오고 국내에 팔 때는 우리 돈으로 파니 환율에 따른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특히 정유회사들은 산유국으로부터 원유를 살 때 곧바로 값을 치르지 않고 보통 도입한 뒤 2~3개월 후에 결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원유 도입 때와 값을 치를 때의 환율이 다르기 때문에 이로 인한 손해(환차손)나 이익(환차익)도 발생합니다.

이 손익도 국내 유가에 반영됩니다. 정유사들은 매달 말 또는 새달 초 다음 한 달 동안의 기름값을 결정해 발표를 하는데 환율 급변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환차익이나 환차손 발생분을 대략 3개월에 걸쳐 나눠 국내 유가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 오일쇼크=산유국들이 원유 공급을 급격히 줄여 국제적으로 원유 및 석유제품 가격이 급등하는 현상으로 물가가 치솟는 등 경제에 많은 부작용을 초래합니다.

우리나라는 1973년과 1979년 1, 2차 오일쇼크를 경험했습니다. 현재는 원유 생산 지역이 다양해지면서 중동 원유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져 예전 같은 석유파동이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영렬 기자 young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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