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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엔 구급약 … 12년 묵힌 안동소주 ‘깊은 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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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삼을 캤다. 가장 오랫동안 보관해 맛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냉장시설이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엔 술 속에 보관하는 방법밖엔 없었다. 술은 약재의 기운을 유지하면서도 오래 간직할 수 있는 금고다. 술의 이 믿음직한 보관성은 ‘알코올 도수 25% 이상에서는 미생물이 살 수 없다’는 물리적 조건 때문이다. 소주가 귀했던 시절, 소주는 약과 같은 존재였다. 조선 중기의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소주는 오직 약으로만 쓸 뿐 함부로 먹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옛 문헌에 소주는 많이 마시면 몸이 상하고 죽음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소주를 약으로 쓰는 것은, 가슴이 답답한 울결(鬱結)이나 뱃속에 뜬뜬하게 뭉친 냉적(冷積)을 치료하고, 설사를 멈추게 하고 곽란을 다스리기 때문이다. 병원이 멀고 의원이 귀했던 시절에 가정의 구급 상비약으로 소주를 사용한 셈이다. 서양에서 위스키를 구급약으로 쓰는 것과 비슷한 경우다.

술에 들어간 부재료인 꽃이나 잎은 덧술할 때 들어가거나, 달여서 들어간다.

하지만 오늘날 소주는 더 이상 약이 아니다. 소주를 약처럼 쓰기는커녕 물처럼 마시는 세상이 됐다. 아무리 좋은 약도 많이 먹으면 독이다. 1960년 중반 이래로 저렴한 희석식 소주(발효된 술을 연속 증류해 에탄올 95%로 만들고, 이를 물로 희석해 만듦)가 대중화되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이 희석식 소주는 1919년 평양에 기계식 소주공장이 등장하면서 한반도에 첫선을 보였다. 곡물이 귀했던 시절 3~5병의 청주를 증류해야 1병의 증류식 소주(발효된 술을 단식 증류해 원재료의 향과 맛이 살아 있는 소주)를 얻을 수 있던 시절 소주는 구경하기조차 어려웠다. 마시는 술이 값싼 희석식 소주가 아니라 오래 숙성시켜 향기와 기품이 있는 증류식 소주라면 술을 약처럼 아껴 마시게 되지 않을까.

6개월 이상 숙성시켜 발효하는 안동소주

경상북도를 대표하는 증류식 소주는 안동소주를 꼽을 수 있다. 2012년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 증류식 소주 부문에서 장려상을 받은 로얄 안동소주는 12년을 숙성시킨 술이다. 한 모금을 마시면 잘 뭉쳐진 탄력 있는 공 같다. 입에 들어온 액체가 튕겨 올라 코끝을 치고, 포물선을 그리며 목젖을 넘어간다. 알코올 도수는 45%인데도 거칠지 않게 타고 넘어간다.

 만약 숙성이 되지 않은 45% 소주였다면 폭죽을 입에 넣는 것 같았으리라. 입에서 사납게 튀는 맛에 눈물이 핑그르르 돌고, 맛은 산지 사방으로 갈라졌을 것이다. 그래서 좋은 소주가 되려면 적어도 6개월 정도는 숙성돼야 한다. 6개월 정도 숙성시키면 발효 과정에서 생긴 알코올의 휘발성 자극취가 눅어진다. 6개월이 지나면 미세하게 공기와 접촉하고 알코올도 증발하면서 맛이 원숙해진다. 소주가 3년이 지나면 고유한 향기가 잡히면서 부드러워지고 맛도 둥글게 잘 뭉쳐진다. 12년 산 안동소주는 그 경지를 넘어 새로운 맛에 도달해 있다.

연꽃 향기 나는 하향주, 들국화·약쑥 듬뿍

비슬산 아래 유가면은 찹쌀의 산지로 유명하다. 그 찹쌀로 빚는 약주가 대구시 무형문화재 제 11호로 지정된 비슬산 하향주다. 연꽃 향기가 난다는 술인데, 술 빚을 때는 정작 연꽃이나 연잎이 들어가지 않는다. 옛 문헌에도 자주 등장하는 술인데 쌀과 누룩만으로 곱게 술을 빚어도 연꽃 향기가 나는 술이다. 비슬산 하향주에 특별히 들어가는 약재는 들국화·인동초·약쑥이다.

 하향주는 약효를 염두에 둔 약주다. 원료인 찹쌀은 위장을 보호하고, 약쑥은 혈액 순환을 개선하고, 들국화는 두통에 좋다. 또 인동초는 해독 작용이 있다. 술빛은 노르짱한데, 찹쌀의 묵직한 단맛 위로 쌉싸름한 맛과 감칠맛이 두툼하게 층을 이루고 있다. 술을 넘기고 나면 약재의 향이 혀끝에 맺히는데, 그 향이 유순하면서도 다음 잔을 궁금하게 한다.

 소백산 아래 영주시에 가면 풍기 홍삼막걸리가 난다. 2012년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에서 살균 막걸리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술이다. 풍기 홍삼의 깊은 향기가 막걸리의 살균취를 절묘하게 가리면서 술맛을 섬세하게 떠받쳐주고 있다. 풍기 홍삼막걸리에는 홍삼액 5%가 들어가는데, 홍삼은 혈압을 낮춰 주고 피로 회복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술에 약재가 들어가는 것은 술의 독성을 줄여보겠다는 소극적인 의미도 있지만, 술의 기운을 빌려 몸속에 약효를 빨리 퍼지게 하려는 적극적인 의미도 담겨 있다. 그래서 삼이든 뱀이든 몸에 좋은 것을 술에 담아놓는 습관이 생겼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것이 들어간 술이라 해도 그것만으로 건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은 잊지 말아야 한다.

글=허시명 (농림수산식품부 지정 우리 술 교육 훈련기관 ‘막걸리 학교’ 교장, 『막걸리, 넌 누구냐?』 『술의 여행』저자)

◆대구-경북의 술

01 달성 하향주/ 하향주가 017-517-3650

02 대구 불로막걸리/ 대구탁주 합동 053-983-6600

03 대구 토마토와인/ 농업회사법인 토마토와인 053-615-0011

04 문경 오미로제/ 제이엘크라프트 와이너리 070-4351-1541

05 문경 오미자막걸리/ 문경주조 054-552-8252

06 문경 호산춘/ 호산춘 양조장 054-552-7036

07 로얄 안동소주/ 농업회사법인 유토피아 070-7439-3129

08 명인 안동소주/ 명인 안동소주 054-856-6903

09 민속주 안동소주/ 민속주 안동소주 054-858-4541

10 영덕 새송이살균막걸리 정/ 영덕주조 054-733-5641

11 영천 까브스토리/ 금호포도 영농조합법인 054-335-7070

12 영천 씨엘고도리와인/ 고도리 와이너리 010-3514-6470

13 청도 감그린/청도 감와인 054-371-1904

14 풍기 백년친구 홍삼막걸리/ 만수주조 054-634-5641

15 의성 주지몽 애플와인/ 한국 애플리즈 054-834-7800

16 김천 과하주/ 김천 과하주 054-436-4461

17 경주 교동법주/ 경주 교동법주 054-772-2051

18 포항 영일만친구 막걸리/ 동해양조장 054-284-3049

19 포항 불로주/ 포항불로주 054-246-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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