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 없어졌다'수술후 우울증앓다 남편을…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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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후 경남 창원시의 한 주택 거실에서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어머니(51)와 아버지(56)가 숨져 있는 것을 딸(27)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거실에는 흉기가 발견됐고 두 사람의 몸은 상처와 피투성이였다. 경찰은 아내 A씨가 남편을 칼로 30여 차례 찌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했다.

 A씨는 왜 이런 일을 벌였을까. 경찰에 따르면 발단은 암이다. 그녀는 자궁경부암 1기 진단을 받고 9월 자궁 적출(摘出) 수술을 했다.

그 이후 A씨는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경찰 관계자는 “A씨는 수술 후 ‘자궁이 없어졌다’며 우울해했고 울기도 했다. 몸이 좀 나아졌다 다시 아픈 상황이 반복되자 우울증이 심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의 암치료 수준은 세계적이지만 환자들의 정신적 고통은 방치돼 있다. 암은 불치병이나 난치병이라는 인식이 있어 환자들은 심리적 충격을 받는다. 불안·우울·강박증세에다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에 시달리기도 한다.

의학계에서는 암환자의 포괄적인 정신적 고통을 디스트레스(distress)라고 부른다. 국립암센터가 2009년 위·간·폐·대장·유방·자궁암 환자 375명을 조사했더니 158명(42.1%)에게서 디스트레스 증세가 확인됐다. 41.8%는 우울증세를, 40.9%는 불면증을, 28.7%는 불안을 호소했다. 암환자의 우울증이 일반인의 3.3배, 불안장애는 10.4배에 이른다.

자살률은 일반인의 두 배에 달한다. 여자보다 남자가, 암 진단 후 1년 안에 목숨을 끊는 경우가 많다. 남자는 췌장·담도·구강인후암에서, 여자는 폐·난소·췌장암 환자의 자살률이 높은 편이다(국립암센터 자료).

 2009년 10월 수도권의 한 병원에서 희귀암을 앓던 50대 여성이 목숨을 끊었다. 이 여성은 암이 재발하자 심한 우울증에 빠졌다. 그녀는 “고3 아들과 남편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안 좋은 모습만 보여준다. 힘들게 치료받아야 재발할 것이고 가족에게 부담만 준다”며 처지를 비관했다.

 디스트레스를 가족이나 의료진이 알아채지 못하는 일이 많다. 국립암센터 유은승(35·여) 임상심리 전문가는 “치료가 오래가거나 항암치료로 인해 구토·탈모 등의 부작용이 있을 때 우울증에 잘 걸린다”며 “하지만 가족들이 으레 힘든 것으로 생각하고 넘어간다”고 말했다.

 서울대 의대 윤영호 건강사회정책실장은 “암환자 관리가 치료 위주여서 디스트레스는 관리가 안 된다”며 “컴퓨터단층촬영(CT)으로 환자 상태를 주기적으로 확인하듯 정신 건강도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실장은 “그러려면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자원봉사자가 한 팀이 돼 환자를 종합적으로 돌봐야 하는데 여기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병원이 투자에 인색하다”고 지적했다.

◆ 디스트레스(distress) = 암환자들의 정신적 고통. 암에 걸렸을 때의 충격·현실부정·분노·공포·불안·우울·자책·고독 등 다양한 감정반응이 투병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심한 상태를 말한다. 미국 종합암네트워크(NCCN)가 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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