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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궁절제, OECD 2배 넘어 … 보험수가 높아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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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백화점 직원인 정모(34·인천시 서구)씨는 생리 기간에 과도한 출혈과 통증을 겪어 생활이 힘들 정도였다. 정씨는 지난 3월 자궁근종이 다섯 개나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자궁절제를 권했다. 하지만 정씨는 우연히 자궁을 절제하지 않고 치료를 하는 방법이 있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치료법은 자궁으로 가는 혈관을 차단하는 자궁색전술이었다. 정씨는 “치료를 받은 뒤 생리량과 통증이 줄어 이젠 지낼 만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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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부 석모(42·경기도 성남시)씨는 30대 이후 극심한 통증이 동반된 생리가 10일가량 지속돼 생리 때마다 우울·불안에 시달렸다. 자궁에서 내막 조직이 커지는 선근증(크기 8㎝)이 발견됐고 주치의로부터 자궁절제가 불가피하다는 말을 들었다. 여성의 상징인 자궁을 잃고 싶지 않았던 석씨는 지난 1월 고강도 초음파 치료(HIFU)를 받았다. 시술 4개월 뒤 선근증 크기가 절반으로 줄었고 생리통·빈혈도 눈에 띄게 완화됐다.

 길이 7㎝ 안팎, 무게 70g가량의 큰 달걀 크기인 자궁은 임신과 생리가 일어나는 곳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35세 이상 여성 2명 중 한 명 정도는 자궁에 근종(양성 종양)이 생긴다. 해마다 적지 않은 여성이 자궁암이나 자궁근종 때문에 자궁을 떼는 수술을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2년 헬스데이터’에 따르면 한국 여성 10만 명당 329.6명(2010년 기준)이 복강경 자궁절제술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자료에 따르면 복강경 자궁절제술을 받는 환자 수가 다른 OECD 회원국보다 월등히 높다. 미국 여성은 10만 명당 104.9명이고 영국 여성은 26.9명에 불과하다. OECD 회원국 평균(2009년 기준)은 우리나라의 절반 이하인 115.9명이다.

 국내에서 자궁절제가 자주 일어나는 까닭은 무얼까. 우선 저출산과 비만, 서구식 식생활 등으로 자궁근종 환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자궁근종으로 진료받은 여성의 수는 2008년 21만8988명에서 지난해 28만5120명으로 늘었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병원 입장에서도 자궁근종 환자에게 자궁절제술을 실시하는 것이 자궁을 살리고 근종만 떼어내는 수술보다 이익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병원에 지급하는 자궁절제술의 보험수가는 38만390원으로 근종만 떼어내는 수술(23만2510원)보다 높다. 게다가 자궁 4~5㎝ 깊이에 근종이 세 개 있을 경우 근종만 떼내는 데 걸리는 시간이 자궁절제 수술시간(평균 1시간30분)의 두세 배나 걸린다. 수술 도중 피가 많이 나고 수술 후 근종이 재발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는 것도 의사들이 자궁을 살리는 근종 수술을 꺼리는 이유다.

 분당서울대병원 산부인과 서창석 교수는 “다음 달부터 자궁 질환에 대한 포괄수가제(DRG)가 시행되면 수술시간이 짧은 자궁절제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포괄수가제는 의료 서비스와 관계없이 질환에 따라 미리 정한 진료비를 지급하는 제도다. 같은 질환이라면 병원 입장에서 치료하기 쉬운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남베드로병원 산부인과 김민우 원장은 “자궁절제술을 받은 여성에겐 상실감·우울·성교통(痛) 등 후유증이 동반될 수 있다”며 “자궁절제를 할 때 난소를 남겨둔다고 해도 난소로 가는 혈류가 감소해 난소 기능이 빨리 저하된다”고 말했다. 건강을 위해선 자궁을 보전하면서 자궁근종 등을 치료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란 설명이다. 서울성모병원 산부인과 김미란 교수는 “근종이 있을 때는 근종만 떼내거나 초음파 열치료를 받는 대안이 있지만 자궁에 암이 있거나 자궁근종의 크기가 커 주변 장기를 압박하는 경우엔 자궁절제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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