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인수위 만병통치약 만들지 않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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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 인수위에 변혁의 열정이 넘쳐난다. 국정 개혁의 아이디어와 정책 과제는 차별성과 파격성이 두드러진다. 그 덕분에 신선감은 돋보이나 그만큼 불안감도 만만치 않다.

재벌 개혁 등 민감한 정책이 인수위 자체의 조율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쏟아지면서 그런 여론은 커지고 있다. 인수위의 주력 멤버는 소장학자이거나 노무현 당선자의 386세대 참모들이다.

때문에 인수위가 국정을 학문적 실험대상으로 삼으려 한다는 비판 여론도 있다. 인수위 멤버 일부가 '민간 평의회(civic junta)'식의 초헌법적 발상을 갖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아냥 섞인 의혹도 없지 않다.

그런 잡음과 혼선은 인수위 멤버들의 개인적 의욕 과잉 탓도 있고, 언론 취재경쟁의 부작용도 원인 중 하나다.

그런 속에서 출범한 지 얼마 안되지만 인수위의 이미지는 변화 의지, 개혁의 기대감과 함께 아마추어리즘.현실과 괴리감.짜임새 부족이 엉켜버렸다.

인수위 활동의 경쟁력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선 이런 부정적인 인상은 치명적이다. 그런 점에서 정순균 대변인이 "인수위가 만병통치약을 만드는 곳이 아니다"고 한 접근자세는 바람직하다.

노무현 당선자가 인수위의 위상을 권력인수 아닌 정책인수로 설정한 바 있다. 그런 주문의 핵심 요소는 정책과 비전의 실천성 확보다.

국정 전반을 강의실에서처럼 주무르려 하지 말고 정책의 우선순위와 경중을 짜임새 있게 매겨달라는 것이다. 인수위가 만기친람하듯 국정 전반을 장악하는 곳이 아니라는 얘기다.

"권력인수가 아니다"는 지적은 5년 전 DJ 당선자 시절 점령군처럼 으스대선 곤란하다는 주변 경계일 것이다. 인수위의 활동 환경은 질풍노도의 개혁을 했던 YS 때나, IMF 위기극복을 내세웠던 DJ 때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변화와 개혁을 주도하는 인수위에 대한 기대감은 상당하다. 그럴수록 인수위는 권력 쪽은 낮은 자세로, 정책 쪽은 실천의 수단과 방안을 현실적으로 다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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