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권근영의 그림 속 얼굴

창공의 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2면

최재은, Finitude, 8시간, 비디오 설치, 2012 [사진 국제갤러리]

“별이 총총한 하늘이 갈 수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들의 지도인 시대, 별빛이 그 길들을 훤히 밝혀주는 시대는 복되도다. 그 시대에는 모든 것이 새롭지만 친숙하며 모험에 찬 것이지만 뜻대로 할 수 있는 소유물이었다.”(루카치, 『소설의 이론』, 김경식 옮김, 문예출판사, 2004)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17년 전의 3월, 이름만으로도 거기 모인 풋내기 200여 명을 압도했던 노교수가 부르짖었던 문장이다. ‘문학개론’ 첫 시간, 그가 그렇게 자신의 연구 인생의 시작이자 과정이자 결과를 압축하고 있음을 그땐 몰랐다. 허름한 인문대 강의실을 별이 총총한 하늘 삼아 그 별을 길로 믿고 얼마든지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강의실 밖 신록에 춘심(春心)이 동하고 선배들의 낮술이 유혹하던 때였다. 그의 강의를 얼마나 알아들었을까마는 그때의 분위기만은 빛바랜 사진처럼 아로새겨졌다.

 그리고 5년 뒤, 여전히 학교 언저리를 헤매고 있는데 그의 퇴임 강연이 열렸다. ‘갈 수 있고, 가야 할 길, 가버린 길-어느 저능아의 심경 고백’이라는, 설마 남이 붙이진 못했을 제목이었다. 평생 교류했던 문단의 거성들과 그를 따랐던 제자들, 그리고 언론의 카메라가 뒤엉킨 그 화려한 자리에서 그는 다시 한번 ‘창공의 별’을 얘기했고, “인간으로 태어나서 다행이었고, 문학을 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고 말했다.

 별이 보이지 않는다. 문학에서도 미술에서도 척박한 도시에서의 생존법, 실패한 이상을 말하는 작품이 주종이다. 어쩌겠나, 그게 우리 시대인 것을. 이런 때 재일 개념미술가 최재은(59)의 ‘Finitude(유한성)’를 보러 가길 권한다. 베를린 남동쪽 작은 마을의 하루 밤하늘을 찍은 8시간짜리 영상을 상영 중이다. 깜깜한 전시장에서 정지된 세 개의 화면을 응시하다 보면 그 어둠 속에서 실은 별과 달, 구름, 공기가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러 겹의 종이를 세계 곳곳에 수년간 묻은 뒤 꺼내며 시간의 지층을 기록하는 작업(‘월드 언더그라운드 프로젝트’)을 1986년부터 지속하고 있는 이 작가는 “무한히 유한한 존재인 나와 부딪치는 듯한 느낌을 공유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 밤하늘을 응시하다 보면 저 옛날 배낭 하나 메고 어디든 떠날 수 있었던 자신과 대면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문학과 예술에 달떴던 과거를 기억하는 이라면 올가을 출간된 808쪽짜리 책 『내가 읽고 만난 일본』에도 도전해 보길 권한다. 문학평론가 김윤식(76) 서울대 명예교수의 자전 에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