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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쩍 다가온 20대 북한女 "산삼인데 20달러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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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중앙일보 LA지사의 이원영 기자(오렌지카운티 총국장)가 지난달 3일부터 10일까지 북한의 평양과 지방을 돌아봤다. 이 방북 취재는 2010년 정부가 취한 5·24 대북교류 제한 조치 이후 한국 언론으론 처음이다. 평양에서 열린 10·4선언 5주년 해외동포 통일토론회를 위해 방북한 이 기자는 김정은 체제 이후 변모하는 북한의 속살을 생생하게 체험했다. 그의 방북기를 2회에 걸쳐 소개한다.

“알다시피 조국이 무척 어렵습니다. 좋은 물건을 많이 만들어도 내다 팔 데가 없습니다. 다 막혀 있습니다.”

이원영

 지난 10월 3일 평양. 첫날 저녁 식사에서 미주동포 일행과 상견례를 하면서 북측 간부는 이렇게 운을 뗐다. 배급도 원활하지 못했고 선군(先軍)정치를 하는 동안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을 수 없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동석한 다른 북측 인사는 “선군정치로 핵무기를 가질 수 있게 됐고, 비로소 전쟁공포(미국의 침공)에서 벗어나게 됐다”며 “이제는 경제에 ‘다걸기’(올인) 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고 말했다.

 다음날 아침 평양 시내에 나서자 곳곳에 내걸린 구호가 눈에 들어왔다. ‘미 제국주의 타도’ 등 전투적 내용은 잘 보이지 않는다. ‘미래를 위해 더 많은 땀을 흘리자’ ‘최첨단을 돌파하라’ ‘첫째도 질, 둘째도 질’과 같은 경제구호들이 일터마다 가득했다. 잘 살아보자는 슬로건이 넘쳐나고 생산증대의 발걸음을 재촉하는 평양의 아침거리, 그리고 절대권력자의 얼굴이 겹치면서 북한에서 1970년대 한국의 새마을 운동이 부활한 듯했다. 평양 평천구역의 ‘새마을 거리’란 이름도 예사롭지 않았다.

 미국 땅에서 방문한 기자에게는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는 구호가 특히 눈에 띈다. 2009년 김정일의 김일성대학 연설에서 따온 것이다. 지난해 12월 김정일 사후 이 구호는 더 많이 내걸렸다고 한다. 주체성을 유지하면서 세계 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하자는 메시지다. 통일교와 북한의 합작사인 평화자동차의 광고판에도 ‘민족이 힘 모아 세계로’란 카피가 새겨져 있다. 개방 압력을 받고 있는 북한 스스로 ‘세계로’ 구호를 외치고 있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세계화를 위한 노력이냐”는 질문에 북측 학자는 정색을 했다. 서방에서 말하는 세계화는 북에 식민지나 종속국가가 되라는 의미나 마찬가지라 했다. 주체사상과 그런 세계화가 양립할 수 없다는 논리다.

거리에선 예상보다 훨씬 활기찬 북한의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일행 중엔 몇 해 전 북한을 방문했던 미주동포가 4명 있었다. 이들은 한결같이 “북한이 너무 많이 바뀌었다”고 놀라워했다. 차도 많아지고, 고층 건물들이 부쩍 늘었다고 했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밝아지고 무엇보다 발걸음이 활기차다고 한다. 전에는 툭하면 전기가 끊겼는데 이번엔 야경도 훤해졌다고 했다.

 곳곳이 공사 중이었다. 아침에 삽 등 도구를 챙겨 들고 일터로 향하는 이들이 우리 방북단에 손을 흔들며 인사하기도 했다. 대체로 표정이 밝았다. 거리마다 확성기에서는 정신무장과 생산성 고양을 강조하는 메시지가 흘러나오고, 중학생 오케스트라가 거리 콘서트를 하며 출근길 발걸음을 독려했다.

 이전과 다른 영농방식을 도입해 배고픔을 면해 보겠다는 의지도 강하게 엿보인다. 김정일의 지시에 의해 채소 신품종 개발과 경작방법 개발을 위해 설립된 남새과학연구소에서는 영양액을 중앙집중식으로 공급하는 수경재배로 토마토 수확량을 2배 이상 늘렸다고 했다.

 평양의 신(新)부촌으로 떠오르는 창전거리 아파트엔 297(90평), 330(100평)에 달하는 아파트도 많다고 한다. 야경도 볼만했다. 인근엔 서울의 고급 카페를 옮겨 놓은 듯한 곳도 있다. 특권층, 신흥부자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했다.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낙후된 농촌이 나타나는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북한에서도 부익부 빈익빈의 징후가 보인다.

 ‘돈맛’을 알게 된 주민들이 적극적인 경제행위를 하려는 모습들도 보였다. 우리를 관광객으로 알아본 20대 여성은 슬며시 다가와 “산삼인데 20달러만 달라”고 박스를 열어 보이기도 했다. 대로변 한 구석에서 남들의 눈을 피해 물건을 몰래 사고파는 모습도 목격됐다. 대동강변에는 자그만 보따리를 풀고 무슨 물건인지 오가는 사람들에게 팔기도 했다. 정해진 ‘장마당’(시장)을 제외하고는 개인의 상행위가 허용되지 않지만, 개인 간 상거래는 점점 늘어나는 듯했다.

 장마당을 보고 싶다고 부탁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도시마다 형성된 장마당엔 최근 중국산 물건들이 쏟아지면서 ‘없는 것이 없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성황을 이루고 있다 한다. 북한의 급속한 자본주의화로 해석될 우려가 있어 장마당을 외부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을 것이란 짐작이 갔다.

 외화벌이를 위한 관광객 유치에도 적극적이다. 재능 있는 학생들에게 예능을 가르치는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에서는 학생 연예인들의 노래·무용·기예 공연이 이어지는데 해외 관광객들이 관람객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다. 궁전 앞에는 관광버스들이 즐비하다. 지난 4월엔 198만(60만 평) 규모의 야외 역사관인 평양민속공원이, 7월엔 능라인민유원지가 문을 열어 활기찬 무드를 더하고 있다. 조선우표박물관, 민예전람실 등도 외국 관광객들의 필수 쇼핑 코스다.

 서양인 중에는 유럽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스웨덴 출신의 한 관광객은 “인터넷에서 외국 관광객을 적극 환영한다는 광고를 보고 오게 됐다. 지도자를 숭배하는 내용이 많아 거북하긴 했지만 신기한 게 많아 재미있는 여행을 하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평양=LA중앙일보 이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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