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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세상] 외래문화 뿌리 내리려면 토착문화 이해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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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10월 16일. 프랑스 인도차이나 함대 로즈 제독이 이끄는 군함 7척과 해병대 6백명이 강화성을 공격, 점령한다. 민가.군영 가리지 않고 무차별 포격을 가하며 강화도와 인근 황해도 지역까지 초토화시키던 프랑스군은 11월 7일 강화도의 요새인 정족산성 공략에 나선다. 그러나 양헌수 장군이 이끄는 매복병의 일제 사격에 걸려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11월 11일 강화도에서 철수한다.

우리 역사에 '병인양요' 로 기록되는 이 사건은 그 해 정초부터 천주교 금압령을 내리고 프랑스 선교사 9명을 비롯, 수천명의 조선인 천주교도를 처형한 '병인박해' 에서 시작된다. 선교사 학살을 극구 비난하며 그 책임자 엄벌 요구를 명분으로 프랑스군이 쳐들어왔기 때문이다. 그 강화도에 1996년 최초의 대학인 인천가톨릭대학이 들어섰고 부설기관인 겨레문화연구소에서 최근 『강화 구비문학 대관』을 펴냈다.

8백33쪽에 이르는 방대한 이 책에는 오늘까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강화 지역의 설화와 민요가 빠짐없이 들어있다. 자그마한 섬이면서도 강화도는 민족사의 축소판이요 민족 문화유산의 보고다.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낸 참성단과 선사시대 유물인 고인돌이 있다. 몽고제국의 침략에 항거하며 한민족의 정기와 자존을 지켰던 고려의 도읍이기도 했으며 세계에 문호를 개방하게 된 강화도 조약이 체결된 곳이기도 하다. 강화도의 역사와 사상과 삶은 곧 한민족의 그것이기에 이 지역에서 전해온 이야기와 노래들은 그만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지난 4년간 인천가톨릭 대학생들과 함께 7회에 걸쳐 강화의 모든 자연부락을 답사하며 설화와 민요를 채록해 이 책을 편찬한 김문태 교수에 따르면 강화의 구비문학은 비극적인 측면보다 우월적인 측면이 강하다. 강화가 옛도읍이자 관문으로서 요충지이며 국운을 좌우할 정도의 정기가 서려있다는 자긍심이 여실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래 지금도 참성단에서 전국체전의 성화불을 붙여오고 있고 다른 지역보다 그곳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더 확실히 올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 책은 강화지역, 나아가 우리 민족의 토착문화를 보존.계승.발전에 그 출간 의의를 둘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미신으로 돌릴 수 있는 설화나 민요를 가톨릭에서 채록, 연구했다는 데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우리의 민속을 미신으로 몰아 초창기 가톨릭 교도들은 그 많은 박해를 불렀고 지금도 김교수에 따르면 "자신은 천주교를 믿지 않는다며 매몰차게 문을 닫고 들어가는 제보자를 설득하느라 진땀을 뺄" 정도로 가톨릭은 우리와는 적대되는 종교로 치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책은 한국 가톨릭 교회가 이 땅에 뿌리를 내리게 되는 데 있어서 소중한 자원이 될 것이며, 민족문화를 향상하는 데 일조를 하게 될 것" 이라고 인천가톨릭학원 이사장 나길모 주교는 밝혔다. 외래의 것이 진정으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토착의 것을 이해.보존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의 출간이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1백35년 전 침략과 문화 약탈의 병인양요의 명분을 주었던 천주교가 이제 토착 문화의 보존.진작에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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