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론] 경제난국 풀 해법없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아무리 다원화한 사회라고 하지만 이렇게 국론이 분열되고, 제 잘난 정치인들의 폭언만 난무할 수는 없다.

수출이 유사 이래 최저치로 하락하고, 기업의 투자활동도 극도로 위축된 상태에서 연말까지는 미국과 일본 등 세계경제마저 악화일로를 걸어갈 것이라니 편작(扁鵲)이 열이라도 이 중병을 치유하기란 불가능할 지경이다.

*** 국민에 던진 문제덩어리

그런데도 정부에서는 외환보유고가 9백70억달러를 넘어 사상 최대에 달하고, 북한이 열리면 경제도 만사형통이나 될 듯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만 고대하고 있으니 도대체 정부의 입장은 낙관론인지 배짱론인지조차 모를 지경이다.

학교처럼 '배움의 장' 에서는 선생이 문제를 내고, 학생들이 문제를 푼다. 반면에 사회라는 '실천의 장' 에서는 국민이 만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주체가 바로 정부다.

하지만 시대를 초월해 자신의 논리만 강조하는 선생을 모시고 문하생 정치를 하다 보면 국민을 가르치려고만 한다든지, 아니면 오히려 국민을 대상으로 까다로운 문제만 던지는 연목구어(緣木求魚)식 정책을 내밀기 십상이다.

구조조정뿐만 아니라 교육개혁, 벤처육성, 의약분업, 언론개혁 그리고 최근의 주5일 근무제안은 하나같이 답안이라기보다 국민들에게 던져진 문제덩어리들이다.

수백조원의 공적자금 투입, 교수도 모르는 입시정책 변화, 거품으로 사라진 수십조원의 벤처지원금, 인상된 의료가와 보험료, 그리고 언론개혁에 대한 태도표명 모두 국민부담으로 던져진 문제들이지 그 속에서 수출부진과 투자위축, 그리고 경기침체를 극복하는 해법을 찾아보기란 진정 어렵다.

해답 없이 문제만 던지다보니, 현 정부의 정책기조부터 여론조사에 의존하는 오류 투성이 포퓰리즘에서 도무지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세계 제5대 외환보유국이 된 한국에 제2의 외환위기는 당분간 아니 상당기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집권 초기에 준비된 몇가지 답안만으로 경제를 이끌고 가겠다는 여론몰이식 오만과 독선이 지속되는 한 한국경제의 적신호는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 정부 집권초기에 준비된 답안은 외환 늘리기, 재벌 혼내기, 그리고 북한 퍼주기에 있었다. 외환정책은 분명 성공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지난 정부의 약점을 보완해준 것이지, 현 정부의 강점을 보여준 정책은 아니다. 재벌정책은 여론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편향적 시행 때문에 한국이 낳은 세계적 사업가와 사업체를 국제적으로 몰락시킨 국부손실의 원흉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햇볕정책은 노벨평화상이 증명하듯 인정적으로는 공감하나, 경제적으로는 분석과 분별력이 부족한 야누스적 성향을 갖고 있다.

외환, 재벌 그리고 북한은 경제적 그리고 정치사회적으로 중요한 대상이자 때로는 경제주체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를 다루는 관점을 바꾸지 않으면 3중의 적신호가 겹쳐있는 한국경제의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는데 있다. 즉 외환과 재벌과 북한이라는 변수를 '늘리고, 혼내고, 퍼주는' 대상이 아니라, '잘 쓰고, 크게 믿고, 서서히 사귀는' 파트너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 시장메커니즘 확립 시급

언론부터 술자리에서 내뱉는 젊은 정치인들의 혀 꼬부라진 곡학아세 같은 소리나, 주옥같은 고사성어로 억지논리를 만들어대는 늙은 정치인들의 선문답을 멀리하고, 그 공간에 주5일 근무제를 위한 외국기업인들의 논평, 전력 2백만㎾의 현금가치와 기대효과에 대한 분석 기사나 구조조정에 대한 성공과 실패사례를 정리해 보여주도록 할 수는 없는가?

그리고 꼬일대로 꼬이고 있는 정치문제도 국익을 위한 경제논리로 화합하고 해결하는 정치인들의 나라사랑과 지혜를 한데 모을 수는 없는가!

결국 경제위기아래서도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비합리적 정치논쟁보다 서양인들도 감히 따라오지 못하는 한국인의 초합리적 아이디어를 존중하고,

막무가내로 내미는 노사간.남녀간.상하간, 그리고 노소간의 평등의식보다 개인과 집단의 능력과 성과에 따른 공정보상이 주어지는 풍토 조성,

그리고 위정자의 권위의식보다 기업과 기업인들이 다시 경제주체로 나서도록 해주는 진정한 시장메커니즘이 확립될 때 현금의 경제난국도 안개 걷히듯 우리 눈앞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朴基贊(인하대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