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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음악 진수 보여준 추초 발데스

중앙일보

입력

쿠바 음악이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다. 지난 2월 노장 재즈뮤지션들로 구성된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이 내한무대를 가진데 이어지난달 31일에는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재즈피아니스트 추초 발데스(60)가첫 내한 공연을 했다.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여성보컬리스트 오마라 포르투온도(71)는 오는 9월 11-12일 두 번째 내한 무대를 가질 예정이다. 최근에는 쿠바 혁명가 체 게바라 타계 30주년 추모음반 「Hasta Siempre Comandante(사령관이여 영원하라)」가 국내에 수입발매되면서 쿠바음악 바람이 이어지고 있다.

근대 이후 서양문화에 한없이 경도돼온 우리에게 카리브해의 작은 나라 쿠바를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더구나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는 오랫동안 우리와 벽을 쌓고지내야 했다.

그러나 서양음악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전해진 맘보, 차차차 등이 쿠바음악에 뿌리를 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내밀하게 이어진 음악적 통로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음악적으로 보면, 쿠바가 아주 낯선 나라는 아닌 셈이다.

재즈피아니스트 추초 발데스의 내한무대는 쿠바가 먼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재확인시켜줬다. 2천600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아프로쿠반(Afro-Cuban) 재즈의 달인이 벌이는 현란한 연주세계에 흠뻑 빠진 모습이었다.

변방의 음악으로 치부돼온 월드뮤직(제3세계 민속음악)에 이처럼 많은 관객이모인 것을 보면 국내 음악애호가들의 취향이 더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영미권 음악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음을 뚜렷이 보여준다.

1980년대 마이클 잭슨 이후 미국 팝음악의 세계시장 점령은 20여년이 지난 지금적어도 한국에서는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것 같다. 팝음반 판매가 몇년사이 급격히감소하고 있고 영미권 팝스타들의 내한공연도 대부분 흥행부진을 면치 못해 공연기획자들이 이들의 공연유치를 기피하는 실정이다.

국내에 일고 있는 쿠바음악 열풍은 지난 2월 성공적인 내한무대를 가졌던 재즈밴드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이 불을 지폈다고도 할 수 있다. 추초 발데스의 이번 내한공연도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이 적극 추천해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추초 발데스는 타임지의 "쿠바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재즈 피아니스트"라는 극찬에 걸맞게 쿠바 전통음악과 재즈, 클래식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달인연주자로서 면모를 유감없이 보였다.

키가 2m에 육박하는 '거인'에게 피아노는 작은 장난감처럼 보였다. 그는 피아노를 가슴으로 감싼 채 때론 어루만지듯, 때론 장난하듯 건반을 두드렸다. 크고 굵은 손가락은 건반의 저음부와 고음부를 춤추듯 오갔고 작은 손놀림만으로도 피아노는 큰 소리를 토해냈다.

듀크 엘링턴의 곡 'Caravan'으로 시작된 내한무대는 'El Rumbion' 'Lorraine' 'Bolera' 'Punto Cubano' 등 1999년부터 블루노트에서 발표했던 「Briyumba Palo Congo」「Bele Bele en La Habana」「Live at the Village Vanguard」 등 신작 음반 수록곡을 중심으로 꾸며졌다.

추초 발데스는 타악기 콩가와 드럼이 만들어내는 토속 리듬속으로 끊임없이 파고들며 마치 피아노가 '자연의 소리'에 반하는 이질적인 악기가 아님을 증명하려고시도하는 듯 했다.

특히 퍼커션 주자 야롤디 아브레우 로블레스가 만들어내는 콩가 리듬은 열대 초원에 갑자기 쏟아지는 소낙비와 질주하는 동물들의 발굽소리가 어우러진 대자연이연주하는 합창곡처럼 공연장에 울려퍼졌다.

여기에 타악기인지 건반악기인지 구별이 안될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는 추초 발데스의 피아노 연주는 절로 탄성을 지르게 했다. 추초 발데스의 이번 내한공연은 아프리카 토속 리듬과 재즈가 결합해 탄생한 아프로쿠반 재즈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는 만족스러운 무대를 한국 관객에게 선사했다.

추초 발데스는 쿠바의 아바나에 소재한 트로피카나 카지노의 음악감독이었던 아버지로부터 서너살무렵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디지 길레스피, 사라 본, 냇킹 콜 등재즈 거장들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자란 그는 쿠바 재즈의 역사를 짊어지고 온 산증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대가답게 무대위에서 내내 여유로워 보였고 큰 덩치와는 대조적으로 매우섬세하고 날렵한 연주솜씨를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기분좋고도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다.

다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 4인조 재즈밴드의 공연장으로는 너무 큰 탓이었는지 음질이 또렷하지 않았고, 아프로쿠반 재즈의 흥겨운 리듬을 점잖게 앉아서 들을 수 밖에 없었던 점이 다소 아쉬웠다.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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