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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고전 '혹성탈출' 33년만에 리메이크

중앙일보

입력

SF의 고전으로 꼽히는 '혹성탈출' (3일 개봉) 이 돌아온다. 프랭클린 섀프너 감독.찰턴 헤스턴 주연의 1968년 원작이 팀 버튼 감독.마크 월버그 주연의 2001년판 신작으로 재탄생했다.

2001년판 '혹성탈출' 은 지난해 초 제작발표 당시부터 화제를 모았다. 영화사상 처음으로 인간을 지배하는 원숭이를 내세워 큰 충격을 주었던 원작의 신선함을 '배트맨' (1989년) '가위손' (90년) 등을 연출했던 할리우드의 괴짜 감독 팀 버튼이 어떤 식으로 새롭게 요리해낼지 주목됐다.

일단 미국에선 출발이 좋은 편이다. 지난달 27일 개봉, 역대 주말 박스 오피스 2위인 6천9백55만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1위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 공원2: 잃어버린 세계' (7천2백10만달러) 다.

B급 공포영화와 고딕풍의 동화를 섞어 환상적인 화면을 연출해냈던 팀 버튼의 개성이 이번 작품엔 얼마나 살아있을까. 또 '배트맨' 을 제외하곤 국내에선 별다른 호응을 받지 못했던 그가 어떤 반응을 끌어낼까.

현재 극장가엔 '신라의 달밤' 에 이어 한국영화 '엽기적인 그녀' 의 돌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 철학에서 스펙터클로=사실 지난 10년간 버튼 감독의 행보는 애매했다. 감독 자신의 독특한 감수성과 할리우드의 상업적 시스템 사이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해왔다. '화성침공' (96년) , '슬리피 할로우' (99년) 이후엔 현실과 환상 사이를 떠도는 실체 없는 대중감독이란 평가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신판 '혹성탈출' 은 철저히 할리우드적인 작품이다. 화면 전체를 수놓은 특수효과(컴퓨터 그래픽) 덕택에 '미이라2' '파이널 환타지' 류의 환상적 화면을 꾸며냈다. 상업적인 영화로는 합격점을 통과한 것이다.

레오 대위(마크 월버그) 가 탄 우주선이 엄청난 우주의 자력(磁力) 에 휩쓸려 원숭이 제국에 추락하는 모습, 하늘을 붕붕 날며 인간을 노예처럼 사냥하는 원숭이(猿人) 들 용맹무쌍함, 그리고 작품 후반 원숭이 군대와 무기력한 인간이 결전을 벌이는 장면 등이 스펙터클하다.

세상사에 염증을 느끼고 우주선 탑승을 자원했던 태일러 대위(찰턴 헤스턴) 가 정체 불명의 혹성(결국 나중에 지구로 판명) 에 불시착해 우주선에 동승했던 동료들과 인간의 본성에 대해 나눴던 깊숙한 대화 등은 33년만에 다시 찾아온 '혹성탈출' 에서 기대하기 어렵다.

◇ 한층 깊어진 적대감=버튼 감독은 이번 영화가 리메이크가 아니라고 말했다. 대신 그는 '재방문' 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현대판 클래식에 대한 일종의 경의이자 이번 영화에 대한 자신감의 표시일 것이다.

신판 '혹성탈출' 에선 인간과 원숭이 사이의 적대감이 훨씬 증폭됐다. 대규모 전쟁으로 자멸했던 인간 위에 군림하는 원숭이를 통해 인류의 무모성을 비판한다는 작품의 얼개는 전편과 동일하나 둘 사이의 거리는 크게 벌어졌다.

68년판이 인간과 똑같은 행동을 하는 원숭이를 통해 인간 사회의 부조리를 꼬집는데 집중했다면 2001년판은 인간과 원숭이간의 대결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점은 전편보다 훨씬 심한 욕설을 사람들에게 퍼붓고, 또 인간을 동물 이하로 학대하는 원숭이들의 언어와 행동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을 돕는 여자 원숭이의 캐릭터도 제법 다르다. 동물심리학자인 68년판의 자이라 박사(킴 헌터) 가 태일러 대위의 충실한 보좌역이라면 인권보호 운동가인 2001판의 아리(헬레나 본햄 카터) 는 레오 대위의 연인 비슷한 캐릭터로까지 변모한다.

이런 상황에서 레오 대위는 마치 이스라엘 유민을 이집트에서 구해내는 모세, 나아가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는 예수 같은 영웅으로 떠오른다.

결과적으로 독설.풍자는 살아 있지만 비판.번민은 희석된 느낌이다. 원작과 다른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버튼 감독의 부담감이 빚어낸 결과일까, 아니면 지난 30년새 세상이 더욱 험악해진 걸까.

◇ 역시 사람 손이 최고=올 여름 시장을 휩쓴 '진주만' '툼 레이더' '파이널 환타지' '슈렉' 등과 '혹성탈출' 의 차이가 있다면 앞의 영화들의 거의 컴퓨터에 의존한 반면 '혹성탈출' 은 사람의 손이 빚어낸 영화라는 점.

'혹성탈출' 에도 컴퓨터 그래픽이 많이 사용됐지만 원숭이 모습은 '배트맨' '그린치' 등으로 아카데미 분장상을 다섯번이나 받은 릭 베이커의 솜씨다.

30여년 전의 원숭이들이 겨우 입만 움직이고 얼굴 표정은 굳은 인형에 가깝다면 이번 원숭이들은 실제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원숭이들의 희노애락을 섬세하게 표현한 것은 물론 입술과 치아가 따로 움직일 정도로 정교한 특수분장이 동원됐다. 할리우드의 전문가들은 '파이널 환타지' 의 디지털 배우보다 '혹성탈출' 의 원숭이들보다 훨씬 실물에 가깝다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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