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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보물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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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은 보화를 가득 실은 채 바닷속 어디엔가 묻혀 있는 보물선 얘기는 언제 들어도 솔깃하다.

때가 되면 으레 한번씩 나와 소시민들에게 슬쩍 대리만족을 주는 허황된 얘기가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재미있다. 보물선을 둘러싼 그럴싸한 전설과 천문학적인 보물의 가치, 그리고 이를 차지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과 음모는 소설이나 영화의 단골소재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보물선 성공담은 미국의 센트럴 아메리카호 발굴이다. 1857년 캘리포니아의 금 21t을 싣고 뉴욕으로 향하던 이 배는 허리케인을 만나 북캐롤라이나주 연안 2백마일 해상에서 침몰했다.

1백32년 뒤인 1989년 토미 톰슨이란 기술자가 심해(深海) 로봇을 제작, 2천4백m 바닷속에 잠자고 있던 10억달러(약 1조3천억원) 어치의 보물을 인양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보물선은 '신안 보물선' 이다. 75년 5월 한 어부의 그물에 청자매병 등 6점의 도자기가 걸려 나온 것을 계기로 발굴을 시작, 모두 2만2천여점의 유물을 찾아냈다.

이 배는 중국에서 일본으로 가던 무역선으로 송.원대의 유물이 주류지만 고려자기와 칼코 등 일본유물도 발굴돼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귀중한 학술적 가치를 갖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보물선이 묻혀 있는 곳은 '배들의 무덤' 으로 불리는 카리브해 해역. 오늘도 일확천금(一攫千金) 을 꿈꾸는 보물 사냥꾼들이 열심히 이곳 바다 밑을 헤집고 다닌다.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관련한 보물선 얘기가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야마시타 보물선' 의 전설이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일본군 대장 야마시타 도모유키가 각지에서 약탈한 금괴를 일본으로 실어나르던 배가 침몰했다는 것이다.

해방 직전 거제도 앞바다에 침몰한 일본군함도 야마시타 보물선으로 알려져 현재 탐사가 진행 중이다.

얼마 전엔 러일전쟁 때 울릉도 부근에서 침몰한 러시아군함 돈스코이호 탐사작업이 재개되면서 이를 추진 중인 동아건설의 행보가 관심을 끌기도 했다.

이번엔 청일전쟁 때 서해에 침몰한 청나라 고승(高昇) 호에서 은화와 은괴가 나왔다고 한다. 잘하면 10조원에 달하는 보물이라니 잘 믿기질 않는다.

가뜩이나 짜증나고 어려운 때에 귀가 번쩍하는 얘기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엊그제 25억원짜리 복권 당첨 소식과 함께 서민들 가슴에 너무 바람을 넣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산중의 보물을 찾기 전에 자신의 두 팔에 있는 보물을 이용하라. " - 괴테의 말이다.

유재식 베를린 특파원 jsy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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