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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선, 후보 토론이 있어 멋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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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언 부루마
미국 바드대 교수

미국 대통령 선거 토론의 핵심은 무엇일까. 사실 미 대선에서 후보 토론이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난 봄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은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 후보와 토론에서 맞붙었을 때 선거 쟁점을 주제로 두 시간 이상 홀로 연설을 했다. 미 대선은 연설이 아니라 무대 연기에 더 가깝다. 수많은 코치와 보좌관이 가르쳐준 말들을 끝없이 익히고 연습해, 제기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미리 준비해 토론장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미 대선 토론의 승패는 논쟁의 알맹이가 아닌 말하는 기술, 동작, 표정, 무의식적인 탄식, 미소, 냉소, 부주의한 눈동자 굴리기 등에서 판가름 난다. 후보들이 속물처럼 보이느냐 아니면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는 친밀한 친구로 보이느냐, 또는 미소가 진짜처럼 보이는지 아니면 억지웃음으로 보이는가에 승패가 갈라진다.

 이처럼 어떻게 보이느냐는 대선전에서 중요하다. 1960년대 리처드 닉슨은 존 F 케네디와 대선전에서 맞붙었을 때 텔레비전 때문에 패배한 것으로 평가된다. 케네디는 멋지고 미남으로 보였지만 닉슨은 카메라를 향해 찡그렸으며 수염이 약간 자라난 뺨 위로는 땀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지미 카터는 80년 로널드 레이건과의 토론에서 독선적이고 유머감각이 부족한 사람으로 비쳤으며 로널드 레이건은 친근한 동네 아저씨처럼 보였다. 결과적으로 카터는 이 선거에서 졌다.

 2000년 조지 W 부시와의 대선 토론에서 앨 고어는 자신이 어떻게 보여야 할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처음에는 거만한 사람으로 보였다가 나중에는 교활하고 거짓 연기를 하는 듯한 인물로 왔다갔다하는 이미지를 연출했다. 고어가 말은 훨씬 잘했지만 토론 전체에서 졌고, 결국 선거에서도 패배하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민주당 소속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 후보 밋 롬니와의 이번 대결에서도 누가 최고의 정책이나 가장 건전한 생각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이미지를 연출했느냐에 토론과 대선 결과가 좌우되는 것이다.

 사실 오바마와 롬니는 개인적으로는 사실 많은 부분에서 생각이 같다. 하지만 공화당은 오바마의 자유주의와 너무 거리가 멀어졌으며 롬니는 보수적인 당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다. 미 대선에는 인종적 편견이나 차마 공개적으로는 표출하지 못하는 공화당의 노골적인 극우 성향 등 거론되지 않은 주요 요인이 있다. 미 유권자 중에는 대선 후보가 무슨 말을 하든, 토론에서 어떻게 보이든 흑인에게는 절대 표를 주지 않으려는 사람이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에 정치적인 차이가 정말 별로 없었던 지난 선거에서 인물 대결은 상당히 중요했다. 대략 말하자면 경제와 대외정책 분야에서 후보들은 하나의 경향을 보여준다. 대체로 공화당은 대기업 편을 들고, 민주당은 노동자 이익을 옹호한다. 그러므로 유권자들은 대개 쉽게 마음을 정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권자들은 이성적인 판단보다 자신들이 가장 공감하는 후보에게 본능적으로 표를 던지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본능에 따른 투표는 별로 없을 듯하다. 정치적 차이가 너무도 선명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인물 대결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미 유권자들이 자신들의 나라를 이끌어 달라고 선출하는 사람은 미국인은 물론 전 세계 모든 사람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미국민이 아닌 사람은 미 대선에서 후보를 선출할 수 없기 때문에(만일 전 세계에서 투표를 할 수 있다면 오바마는 분명히 압승할 텐데, 참 안 됐다) 우리는 미국민에게 미국의 운명을 맡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대선이 좋은 점도 있다. 좋은 사람이건 아니건 간에 미 대통령은 4년마다 있는 선거에서 뽑힌다는 점이다. 이처럼 한편으로는 이데올로기적이면서 다른 쪽으로는 미인 대회이기도 한 미국 대선 경쟁은 계속 될 것이다. ⓒProject Syndicate

이언 부루마 미국 바드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