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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 듣고 싶은 한마디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친구가 이민을 간단다. “너, 꼭 가야 되니?” “야, 우리 두고 너 혼자 가면 어떻게 해” “참 좋겠다. 거기는 살기가 그렇게 좋은 곳이라며?” “넌 항상 우리보다 몇 걸음을 앞서 걸었다니까”. 친구들이 제각기 송별의 인사를 전한다. 친구가 말한다. “그러지 말고 꼭 한번 놀러 와라. 거긴 골프도 마음껏 칠 수 있고 좋아.” 섭섭하긴 하지만 그래도 좋은 곳으로 간다는 친구에게 덕담을 건네며 석별의 정을 나눈다. 어깨를 토닥거리며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그래, 고맙다. 너희들 안 잊고 살아가마.” 잠시 눈물이 고인다.

혹자는 죽음을 ‘지구별 소풍 끝내는 날’이라고 표현했다. 신앙을 가진 이들은 장례식을 일러 ‘천국 환송 예배’라 한다. 굳이 따지자면 ‘천국 이민’인 셈이다. 갑자기 의문이 인다. 진짜 좋은 곳으로 떠나간다면 노잣돈도 보태주고 축하해 줘야 할 일이 아닌가? 그런데 왜 떠난 다음 저들끼리 뒷북을 쳐야 할까. 주인공도 없는 송별회, 웃기는 일 아닌가.

난 그래서 소망한다. 어느 날 갑자기 심근경색이나 심장마비로 죽음을 맞이해 가족과 친구들을 황망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내가 소원하는 한 가지는 의사로부터 천국 초청장을 받는 일이다. “드디어 천국 비자가 나왔습니다. 예약번호는 OOO번, 앞으로 3개월쯤 걸릴 예정입니다.” 그러면 난 주저하지 않고 준비할 것이다. 미리 드리는 장례예배로 말이다.

친구들을 다 불러 모으고 난 말할 것이다. 한 사람이 죽어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 인생엔 아쉬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내가 옳지 않았을 때 잊어주지 않은 것, 다른 하나는 내가 옳았을 때 알아주지 않은 것.” 그리고 정중하게 부탁할 것이다. 내가 잘못했던 건 빨리 잊어주고 내가 잘한 건 오래오래 기억해 달라고. 그들의 목소리로 직접 듣고 싶다.

신앙 간증도 들려주고 싶다. 굳이 내 이야기가 아니라도 좋다. 한 소녀가 할머니의 장례식 후 자신의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엄마는 항상 제게 할머니가 하나님과 함께 걷고 말씀하셨다고 이야기하셨잖아요.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하면 말이에요, 어느 날 하나님과 할머니가 아주 오랜 산책을 나가셨어요. 계속해서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게 됐는데, 하나님이 할머니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집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까지 왔는데 피곤해 보이는구나. 그냥 나와 함께 내 집으로 가서 거기서 지내렴’. 그래서 할머니가 하나님을 따라 하나님 집으로 가신 거예요.”(린다 럼, 사랑하는 가족에게 읽어주고 싶은 이야기)

농담도 나누고 싶다. “나는 내가 죽고 난 다음 그 어떤 말보다 이 말 한마디를 듣고 싶다네. ‘어, 저것 봐라. 시신이 움직이네!’” 이런 유머도 괜찮지 않을까? “절친 코끼리와 개미 부부가 여행을 하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코끼리 부부가 죽었다. 장례식이 가까워 오면서 개미 부부가 울면서 하는 말, ‘언제 다 묻어주나?’” ㅋㅋㅋㅋ.

아니,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전별금을 미리 한몫 챙겨 정말 돕고 싶었으나 돕지 못했던 곳에 거액(?)을 희사하고 싶다. 눈을 감은 다음에는 내 시신이 의과대학에 해부용으로 기증됐으면 한다.

일찍이 벤저민 프랭클린이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25세에 이미 죽어버리는데, 장례식은 75세에 치른다.” 나는 이 말을 이렇게 바꾸고 싶다. “어떤 사람들은 75세에 이미 장례식을 치렀는데도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다.” 두고두고 듣고 싶은 한마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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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원 가족생태학자. 행복발전소 하이패밀리 대표로 일하고 있다. 트위터(@happyzzone)와 페이스북으로 세상과 교회의 소통을 지향하는 문화 리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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