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정쟁에 도촬까지 동원되다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42면

정수장학회를 둘러싼 여야 공방 와중에 휴대전화를 몰래 촬영한 ‘도촬(도둑 촬영)’까지 등장했다. 민주당 배재정 위원이 17일 ‘정수장학회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측근과 통화했다’는 증거로 공개한 사진은 장학회 사무처장의 휴대전화 화면이다. 휴대전화 주인은 “지난 15일 민주당 의원들과 취재진이 사무실에 몰려왔을 때 혼자 대처하다 전화를 책상 위에 놓아둔 것 같은데, 누군가 통화 내역을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정황상 남의 전화를 몰래 열어 촬영한 것이 분명하다.

 디지털 시대에 휴대전화는 개인정보의 보고다. 정보화 시대가 되면서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보다 중요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침해당할 위험성은 더욱 높아졌다. 그래서 휴대전화를 엿보고 훔쳐가는 행위는 현 시대에 가장 경계해야 할 프라이버시 침해 행위다. 기계를 탓할 수는 없다. 정보를 훔치고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인간의 행위를 막아야 한다.

 민주당은 국민의 기본권을 앞장서 보호해야 할 공당(公黨)이다. 아무리 정쟁에 매몰됐다 하더라도 이런 불법 도촬로 취득한 정보까지 동원해선 안 된다. 정수장학회 직원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측근과 통화했다는 증거가 아무리 중요한 사안이라 하더라도 도촬 증거물을 버젓이 내놓는 것은 맞지 않다. 민주당은 지난해 KBS 기자가 당 대표실을 도청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을 당시 “(도청은) 민주주의의 근본을 위협하는 중대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이제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 입장에서 스스로의 주장을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

 물론 아직 누가 몰래 휴대전화를 열어보았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민주당 의원 손에 들어갔는지는 확실치 않다. 민주당은 먼저 그 과정부터 밝혀야 할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인권인 프라이버시를 침해한 책임이 누구에게 얼마나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그리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래야 정쟁이 더 이상 혼탁해지지 않는다. 아무리 목적이 정당하다고 해도 수단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아무리 좋은 취지라고 해도 수단이 정당하지 못할 경우 국민적 신뢰를 얻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