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스트 박열 의사의 항일 투쟁, 사랑 생생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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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시민들이 전시실에 마련된 박열 의사의 천황제 반대 투쟁 등에 관한 전시물을 관람하고 있다. 전시된 왼쪽 얼굴사진이 박열 의사. [프리랜서 공정식]

경북 문경새재 아래 샘골마을에 한·일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의 작은 성지가 꾸며졌다.

 문경시 마성면 오천리에 지난 9일 문을 연 아나키스트이자 독립운동가인 박열(1902∼74·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 의사의 기념관과 기념공원이 그것이다. 기념공원은 박 의사의 생가 주변 1만4455㎡(4373평)에 조성됐으며 공원 안 언덕에 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국비 등 57억원을 들인 지상 2층의 기념관은 연면적 1600㎡(485평)로 전시실과 영상실 등이 마련돼 있다.

 기념관에 들어서면 책을 들고 앉아 있는 박 의사의 동상이 보인다. 동상 좌대엔 임시정부 최고 이론가인 조소앙이 남긴 글이 새겨져 있다. ‘천황을 타도하는 선봉에 서시고 민주를 개벽하는 건물이 되시다’. 아나키즘은 반정부와는 다르다. 권력과 지배와 억압이 없는 평등한 사회를 지향한다.

 1층 전시관은 의사의 일대기와 그가 아나키즘 운동을 펼치면서 간행한 『흑도』 등 잡지, 일본 재판 기록, 당시 일본 신문 기사 등이 진열돼 있다. 그동안 일본·북한 등에 흩어져 있던 유품과 사료 등 630여 점이다. 가장 안쪽은 동지였던 일본인 아내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의 특별실이 만들어졌다. 가네코 여사는 도일해 천황제에 맞서 싸우던 박열을 만나 함께 일왕 암살을 모의한 혐의로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았다.

 사형 판결이 나자 박 의사는 “재판장 수고했네. 내 육체야 자네들 맘대로 죽이지만 내 정신이야 어찌하겠는가?”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박열은 이 일로 22년이 넘는 긴 옥살이를 했다.

 전시 자료 가운데는 수감 중인 가네코 여사가 박 의사의 무릎에 안긴 사진이 눈길을 끈다. 기념관을 관리·운영하는 박열의사기념사업회(이사장 박인원 전 문경시장)의 박휘규(61) 사무국장은 “당시 이 사진이 공개되면서 형무소에서 독방을 쓰던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날 수 있었는지 발칵 뒤집어졌다”고 설명했다.

 기념관이 조성되면서 이곳은 일본의 아나키스트들이 찾는 성지가 되고 있다. 지난해에만 가네코연구회 회원 등 300여 명이 일본의 흙과 물을 가져와 가네코 묘소에 뿌리고 그의 흔적을 더듬었다. 기념관이 준공된 뒤에도 벌써 일본인과 재일교포 등 60여 명이 찾아와 전시자료를 꼼꼼히 살피고 있다. 국내 아나키스트 단체인 국민문화연구소 회원들과 연구자, 재일동포도 수시로 이곳을 들른다.

 기념사업회는 16일 인터넷 홈페이지(www.parkyeol.com)도 개설했다. 박휘규 사무국장은 “정작 고향에서조차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며 “박 의사 추모는 물론 아나키스트의 성지로 기념관을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했다.

 찾아갈 때 주의할 점 하나. 문경새재IC에서 5분 거리인 기념관은 진입로를 확인(054-572-3396)할 필요가 있다. 내비게이션에만 의존하면 경운기가 다니는 농로로 빠질 수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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