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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석천의 시시각각

경기고 vs 대원외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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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권석천
논설위원

“그 양반, K1(경기고)이어서 힘들 겁니다.”

 “그렇겠네요. 훌륭한 분인데….”

 이런 대화가 대법관 인사 때마다 오간 게 불과 얼마 전이었다. 대법관 중에 경기고 출신이 많은데 또 경기고가 들어가면 곤란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2010년만 해도 대법관 4명(이홍훈·김능환·박시환·안대희), 헌법재판관 2명(송두환·목영준)에 검찰총장(김준규)과 대한변협 회장(김평우)까지 모두 경기고 출신이었다.

 지금은 온도 차가 확연하다. 현직 대법관은 딱 한 명(김용덕), 검사장급도 한 명(김학의 대전고검장)이다. 이번에 대법관 후보로 추천된 4명 중 두 명(유남석·최성준)의 법원장이 경기고 출신이었지만 결국 정신여고의 김소영 대전고법 부장판사가 임명 제청됐다. 1974년 고교 평준화 조치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전통의 명문고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특정 고교의 독과점은 막을 내린 것일까. 아니다. 20년간의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학맥 하나가 무서운 기세로 떠오르고 있다. 외고, 그중에서도 단연 대원외고다. 2009년 발간된 『한국법조인대관』에 따르면 대원외고가 배출한 법조인 수는 322명으로 경기고(441명)에 이어 2위였다. 올해는 어떻게 됐을까. 대원외고 법조동문회의 안홍준 변호사는 “사법연수원을 수료했거나 연수 중인 동문은 총 470명”이라며 “로스쿨 출신까지 합치면 500명은 족히 될 것”이라고 했다. 한 해에 40~50명씩 불어나는 속도다. 이미 경기고는 추월한 것이 확실하다. 판사만 75명이다.

 이제 관심은 10~20년 후 대원외고 출신이 법조계의 주축이 됐을 때 재판과 수사가 어떤 모습으로 바뀔 것이냐다. 과거 경기고는 전국, 각계각층에서 충원됐다. 가난한 수재가 적지 않았다. 성향도 이질적이었다. 인권운동의 상징인 고(故) 조영래 변호사, 정통보수를 대변하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진보사법의 대표 주자 박시환 전 대법관, 안대희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장,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 학교 출신 법조인이다.

 반면에 외고를 비롯한 특목고 출신은 계층적 동질성이 강하다. 특목고 입학생 중 절반가량이 서울 강남 3구에 거주한다. 부모가 법조인·의사·교수 같은 전문직인 경우가 많다. 기성 법조인들은 “재판·수사하는 자와 받는 자의 출신 계층이 다르다는 건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다음은 법조인들의 육성이다.

 “대원외고요? 일 잘하고 예의도 바르죠. 다만 걱정되는 부분은… 어떤 게 논리적이고 판례에 맞느냐부터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재판 기록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파 들어가고 누굴 보호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아요.”(법원장 출신 변호사)

 “외국어에 능통하니까 해외의 참신한 수사 사례나 판례를 찾아주길 바라는데… 그냥 개인적으로 외국어 회화 잘한다는 의미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부장검사)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했다는 이유로 보수적일 것이라 속단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살아온 패턴이 비슷하다고 해서 생각까지 같다고 볼 수 없는 것 아닌가요.”(부장판사)

 사실 수많은 졸업생을 하나의 캐릭터로 뭉뚱그리는 건 쉬운 일도, 옳은 일도 아니다. 안홍준 변호사는 “강남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온 친구도 많다. 또 대부분은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의 부유층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과거의 명문고처럼 뭉치는 현상이 재연될 것이란 관측에 그는 “요즘 세대답게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 동문 모임을 해도 많이 모이지 않는다”고 답했다.

 분명한 건 대원외고 법조인이 주목의 대상이 됐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이 속한 계층의 울타리 안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우리 사회의 문제, 자신이 속하지 않은 계층의 삶을 껴안고 진지하게 고민할 것인가.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과제는 계층 양극화를 넘어 법정까지 양극화시키고 있는 ‘교육의 사다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가느냐에 있지 않을까. 나는 이것을 경기고 시대와 대원외고 시대를 견주어 본 결론으로 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