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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장과 성장 달라, 약자 보듬는 성장이 경제민주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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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진보 경제학계의 대부’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 4·19혁명 때 교수데모에 참여하며 사회의식에 눈떴다고 한다. [신인섭 기자]

대선을 앞두고 여기저기서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한다. 이 용어를 일찍부터 사용한 인물로 원로 경제학자인 학현(學峴) 변형윤(85) 서울대 명예교수를 빼놓을 수 없다. 1955년 서울상대 교수로 부임한 이래 우리 학계에 ‘진보 경제학’의 토대를 놓았다고 평가받는다. 그의 삶과 사상을 모은 전집이 모두 9권으로 출간됐다. 평생 써온 논문·에세이 9권에다, 제자와의 대화록 『냉철한 머리, 뜨거운 가슴을 앓다』(윤진호 지음, 지식산업사)를 합해 10권이다.

 방대한 전집을 관통하는 한마디가 경제민주화다. 92년 정년퇴임기념 논문집이 바로 『경제민주화의 길』(비봉출판사)이었다. 92년이라면 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정치 민주화’로부터 불과 5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경제민주화의 길』 편집위원은 강철규(서울시립대)·김대환(인하대)·김태동(성균관대)·이정우(경북대) 교수 등이다. 이른바 ‘학현 학파’로 불리는 그의 제자들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 브레인이었다. 일부는 올 대선 야권 캠프에도 참여하고 있다.

 - 경제민주화란 말을 오래전부터 사용했습니다.

 “책 제목에 경제민주화를 내걸기는 92년의 내 책이 처음일 겁니다. 그때만해도 경제민주화가 그리 클로즈업되지 않을 때였습니다.”

 - 당시 경제민주화의 의미는.

 “일본과 비교했어요. 1945년 이후 일본의 경제민주화는 재벌해체, 토지개혁, 민주적 노동조합 등이었습니다. 한국은 일본과 다르죠. 농지개혁은 해방 직후 했고, 민주적 노조도 이미 생겼고, 남은 것은 재벌개혁이었죠. 일본에선 전쟁에 협조한 재벌의 해체 주장까지 나왔지만, 한국은 그와도 다르니 해체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재벌개혁이라고 했습니다.”

 - 92년과 요즘을 비교하신다면.

 “경제민주화의 과제는 크게 바뀐 게 없어요. 재벌개혁에서 가장 중시해야 할 것은 재벌의 은행 지배를 막는 겁니다. 순환출자도 금지해야하고요. 성장에 대한 시각을 조정해야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10% 성장이나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7% 성장은 그냥 성장이 아니라 고성장입니다. 고성장과 성장은 구분해야 합니다. 박정희 정부 때 경제평가교수단 일원이었는데, 9% 성장이 나오면 10%로 끌어올리곤 합니다. 그럴려면 물가를 올려야 하죠. 결국 인플레이션으로 고통받는 것은 경제적 약자입니다. 고성장을 위해 물가는 올라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4∼5%대 안정 성장으로 성장·복지를 함께 추구해야 합니다.”

 -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제자들이 많이 참여했는데 그때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요.

 “경제를 책임지는 자리에 5년 동안 계속 있었다면 바꿀 수 있었을 텐데…. 대기업이 비판하고, 언론도 가세하면 여론을 무시할 수 없으니 장관이나 경제수석을 바꾸게 되죠.”

 - 대화록 제목이 인상적입니다.

 “영국의 경제학자 앨프레드 마셜에서 따왔습니다. 마셜은 경제학을 ‘부의 축적인 동시에 인간 연구’라고 정의했어요. 경제학이 추상적 이론이 아니라 현실적인 인간 연구의 일부라는 거죠. 그 생각을 따랐으면 하는 뜻입니다.”

 변 교수의 전집, 대화록은 일제강점기부터 오늘에 이르는 한국 현대사를 되돌아보게 한다. 그는 현재 서울사회경제연구소와 한국경제발전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출판기념회는 16일 오후 5시30분 서울 낙성대 부근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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