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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최전방·정부 청사, 이렇게 쉽게 뚫리다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대한민국 안보와 보안의 현주소는 도대체 어디인가. 이젠 ‘나사가 풀렸다’ ‘허술하다’고 질타를 하기에 앞서 불안하다. 철책선을 뚫고 넘어온 북한 병사의 ‘노크 귀순’으로 놀란 가슴이 진정되기도 전에 이번엔 서울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가 맥없이 뚫렸다. 인화물질을 소지한 60대 남성이 가짜 신분증으로 청사의 3중 보안을 모두 뚫고 들어가 교육과학부 사무실에 불을 지르고 투신자살할 때까지 아무도 몰랐단다.

 이 건물은 총리실을 비롯해 정부의 주요 부처들이 모여 있는 우리나라 핵심 청사다. 이런 기관의 보안의식이 이 정도라면 테러분자가 별로 큰 준비나 계획을 하지 않고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쳐들어가 유린할 수 있을 성싶다. 더구나 그동안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주요 기밀 유출은 없었는지 살펴봐야 할 것 같다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정부 청사 측은 휴일근무의 특성상 보안이 허술했음을 인정했다. 국가 주요 기관이 휴일에는 문을 열어놓고, 기본적인 방어기능이 무너져 있었다는 건 납득이 안 되는 일이다. 보안에 구멍이 났던 이튿날인 15일, 정부 청사는 출입시스템 관리를 강화하고, 공무원증 패용을 의무화하고, 입주 부처의 방호 강화의 협조요청을 하는 등 보안 강화에 나섰다고 밝혔다. 실제로 외견상 외곽 경비와 신분 확인 절차 등이 강화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본지 사회부 기자들이 이날 국회·정부 과천청사·서울중앙지검·중앙지법·경찰청·한국은행·예금보험공사 등 7개 국가 주요 기관을 무단으로 진입하며 보안 실태를 살펴본 결과 모든 기관이 다 뚫렸다. 특히 이들 기관의 기관장실까지 아무 제지 없이 접근이 가능했다.

 정부 청사 보안이 뚫려 홍역을 치르고 있는 와중에도 보안상태가 이 정도라면 ‘보안불감증’ 정도가 아니라 공직 기강이라는 게 있는지 의심해 봐야 할 지경이다. 불순한 세력들이 우리 기간시설을 유린해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번 사건을 공직자들의 보안의식을 높이고, 공직 기강을 바로잡는 계기로 삼아 앞으로는 정부의 무기력한 모습에 국민이 불안에 떠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