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공동사설 분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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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한이 새해 벽두부터 공동사설을 통해 주한미군 철수와 '우리 민족끼리'를 강조하고 나온 것은 올해 북.미 관계는 물론 남북 간 교류.협력도 녹록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북.미 간에 거칠어지는 핵(核)대치 파고에 '민족공조'를 내세워 맞서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한 때문이다. 이는 공동사설이 "현 시기 조선반도에서의 대결구도는 북과 남의 조선민족 대 미국"이라고 규정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특히 북한은 6.15 공동선언의 이행을 강조하면서 "북남 공동선언에 대한 입장과 자세는 애국과 매국을 가르는 시금석"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을 '통일 방해세력'으로 낙인찍고 "민족공조를 실현하는 것은 통일의 지름길"이란 논리로 연결지은 것. 이를 통해 북한은 북핵이나 대미 관계와 관련해 자신들의 입장에 서 줄 것을 남측에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모스크바 주재 북한대사 박의춘이 지난해 12월 31일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민족공조를 우선시하는 사람과는 누구와도 손을 잡을 것이며 노무현과도 이런 원칙에서 대할 것"이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2일 "북한은 남북교류.협력을 지속하면서도 민족공조를 내세워 선전.선동과 한.미 간 이간책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북핵 국면과 화해.협력정책을 병행한다는 정부의 복안은 북핵 위기가 위험수위를 넘을 경우 이행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북한이 사설에서 북핵 문제를 직접 언급하지 않고, 극렬한 대미 비난도 자제한 것은 향후 정세가 불투명한 데 따라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공동사설=김일성(金日成)사망 이듬해인 1995년부터 신년사를 대체해 발표해 왔다. 과거 중국이 인민일보 등의 공동사설로 시정방침을 내보낸 데서 따온 것.

당보(黨報.노동당) 노동신문, 청년보(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인 청년전위, 군보(軍報) 조선인민군 3개지가 함께 1월 1일자에 실으며 관영 방송매체로 전문을 보도한다. 올해는 A4 용지 약 14쪽 분량.

노동당 선전선동부(부장 정하철) 등이 주도해 문안을 만든 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재가를 받아 공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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