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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곽노현의 선의는 포장된 범의일 뿐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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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곽노현 교육감이 징역 1년의 원심을 확정한 대법원 판결에 따라 결국 교육감 직을 상실했다. 그가 2010년 선거 과정에서 사퇴한 후보에게 당선 뒤 2억원을 준 사실은 움직일 수 없는 것이기에 후보자 사후매수죄를 적용한 이번 판결은 일반인의 법 상식에 일치한다고 본다.

 곽 교육감은 지금껏 돈 2억원에 대해 선의(善意)에 의한 부조(扶助)이므로 처벌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심지어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날엔 “나를 구속하면 국제적인 웃음거리”라며 법원을 압박하는 듯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여러 정황과 사실관계에 입각해 이 돈의 성격을 후보자 사퇴에 대한 대가로 규정함으로써 후보자 사후 매수 행위에 대한 명확한 판례를 남겼다.

 특히 이번 판결은 향후 유사한 선거 부정 행위에 대해 법원이 일정한 선을 그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곽 교육감의 주장처럼 공직선거법상 사후매수죄(232조 1항 2호)는 수십 년간 사문화된 조항이 아니며, 선거에 나온 후보자들끼리 자리나 돈을 주기로 사전에 약속하지 않고 당선 뒤 대가를 지급해도 이를 처벌할 수 있게 돼 선거 부정을 원천적으로 방지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공직에 출마한 후보자들 사이의 검은 거래가 사라질 수 있다면 우리의 혼탁한 선거판을 개선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난 1년 동안 끌어온 곽 교육감 사건은 우리에게 몇 가지 교훈을 준다. 곽 교육감은 구속된 지 4개월 만에 교육감 자리에 복귀한 뒤 학생인권조례 시행을 강행해 정부와 갈등을 빚어 왔으며, 측근들에게 자리를 나눠주다 감사원 감사까지 받았다. 누구보다 도덕성이 요구되는 교육감이 직을 수행할 수 없을 만큼의 흠결이 드러나 재판을 받는 데도 불구하고 그의 행동엔 아무런 제한이 따르지 않았다. 교육감이 걸핏하면 정부와 맞서 싸우고, 구미에 맞는 언론을 택해 자신이 무죄라는 것을 떠들어도 아무도 이를 제재할 수 없었다. 때마침 교육단체들이 도덕성과 윤리성에 문제가 있는 교육감에 대해 형이 확정될 때까지 교육감 직무를 정지시키도록 법을 바꾸자는 청원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교육감 직무 정지 등 현행 제도의 보완도 절실하다.

 교육감의 중도 퇴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공정택 전 교육감 역시 교육감 선거 과정의 문제로 물러났다. 이처럼 교육감 선거는 도덕성을 갖춘 인물을 뽑는 선거라고 보기에 혼탁 양상이 극심하다. 선거비용만 30여억원이 되다 보니 수십 년간 교육계에 종사해온 후보자들이 선거를 치르는 동안 주변에 손을 벌리거나 나중에 직을 걸며 상대 후보를 매수할 공산이 크다. 이번 일을 계기로 고비용 구조의 직선제 방식을 개선할 수 있는 대안도 정치권과 교육계를 중심으로 검토될 필요가 있다.

 교육감은 ‘소통령(小統領)’이라고 부를 만큼 권한이 막강하다. 이는 교육감의 결정이 학교와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교육감 공백에 따른 혼란이 학생들에게 미치지 않도록 교육당국이 각별히 신경을 써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