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전성시 ‘레알 경찰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2면

경찰청 축구단이 각광받고 있다.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경찰청에 몰리는 과정에서 프로팀과 경찰청 감독 간에 설전까지 벌어졌다.

 김호곤(61) 울산 현대 감독은 23일 부산 아이파크와의 경기를 앞두고 경찰청의 입단 테스트에 대해 비판했다. 김 감독의 말에 따르면 20일 경찰청 실기테스트 도중 중앙수비수 이재성(24)이 허벅지 근육 파열 부상을 입었다. 김 감독은 “(경찰청의 처사가) 상식 밖이다. 전날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치른 이재성을 다른 선수들과 똑같이 뛰게 했다. 응급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부상이 심해졌다”고 했다.

 조동현(61) 경찰청 감독이 즉각 반발했다. 조 감독은 24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선수 선발은 내가 아니라 경찰청 축구단에서 객관적인 점수를 가지고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이재성처럼 국가대표와 프로에서 활약한 선수는 1000점 만점 중 500점에 해당하는 가점 항목에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는다. 체력·실기테스트에 참가만 해도 사실상 합격이다. 무리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재성의 부상 상황에 대해서도 “이재성이 통증을 호소해 의료진이 들어갔지만 본인이 괜찮다고 하며 경기를 뛰었다”고 했다.

 논란이 있었지만 이재성은 경찰청 합격자 명단(16명)에 팀 동료 이근호(27)와 함께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두 선수 모두 합격되고도 경찰청에 가지 않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이근호의 에이전트인 김동호 팀장은 “상무가 비록 프로 2부리그지만 내후년 1부로 올라갈 가능성이 있고 기량 발전 측면에서도 상무가 낫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재성도 마찬가지 이유였다. 일련의 해프닝 끝에 두 선수가 상무행 결심을 굳혔지만 경찰청이 선수들 사이에서 상무만큼 괜찮은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프로축구연맹은 지난 11일 상무(국군체육부대)를 K-리그에서 퇴출시켜 2부리그로 강등하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이에 반발해 상무가 아마추어 전환을 발표했다가 입장을 바꿔 24일 “내년 2부리그에 참가하겠다”고 밝혔다. 상무의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프로 2군리그(R-리그)에 있는 경찰청으로 가는 게 경기력 유지에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정조국(서울)·오범석(수원) 등 정상급 선수들이 경찰청에 응시했다.

 경찰청이 이렇듯 관심을 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 만년 꼴찌팀이었던 경찰청은 20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을 맡았던 조동현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프리미어리그를 경험한 김두현이 입대하면서 달라졌다. 올해는 염기훈(수원)을 비롯해 양동현(부산)·김영후(강원) 등 K-리그를 대표하는 공격수들이 대거 들어왔다. 막강 전력을 갖췄다는 의미로 ‘레알 경찰청(레알 마드리드+경찰청)’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지난 10일 끝난 2012년 R-리그에서는 11승1무3패의 뛰어난 성적으로 A조 6팀 중 1위를 차지했다.

오명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