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수에 연연하는 고질적 3분 진료 없애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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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서울병원 송재훈 병원장이 환자 행복을 위한 의료혁신 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대학병원의 고질적인 ‘3분 진료’를 없애겠다. 외래진료 수익이 줄어드는 것도 감수하겠다.”

 삼성서울병원이 다시 ‘환골탈태’를 선언했다. 11일 열린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다. 지난 3월 취임한 송재훈(55) 병원장은 “앞으로 병원은 환자의 행복을 위한 곳이어야 한다”며 “환자 수에 연연하는 병원의 양적 승부를 끝내고 철저히 (의료의) 품질을 높여 경쟁력을 갖추겠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환자 행복을 위한 의료 혁신’은 무엇일까.

 삼성서울병원은 1994년 개원을 하면서 병원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에는 생소한 ‘고객 서비스’를 경영의 앞자리에 내세웠기 때문이다. 고객의 눈높이에 맞춘 이러한 전략은 삼성서울병원을 가볍게 빅5의 반열에 오르게 했다. 이후 다른 병원들의 ‘삼성서울병원 따라잡기’가 시작됐다. 병원들이 앞 다퉈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우리나라 의료가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지금도 삼성서울병원의 작은 변화에도 병원계가 촉각을 세우는 배경이다.

 삼성서울병원 개혁의 중심은 철저하게 ‘환자’다. 송 원장의 개혁 철학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공룡처럼 몸집을 잔뜩 부풀린 대형병원이 계속해서 환자 수를 늘려 경쟁하는 것은 결코 환자를 위한 경영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개원 이후 18년 만에 병원 문화를 바꾸는 송 원장의 전략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양보다는 질’이다. 송 원장은 “환자를 만족시키고, 세계 병원과 경쟁하기 위해 중증질환 중심으로 질적 발전을 도모하고, 선택과 집중으로 핵심 기술을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양성자 치료 등 영상유도 종양소작술, 간이식 생존율 극대화를 위한 개인 맞춤형 치료법, 맞춤형 항암치료제 스크리닝 인터페이스 개발, 치매 줄기세포 치료법 개발 등이 대상이다.

 둘째, 환자 행복을 위한 ‘통합 진료’다. 지금까지는 환자가 병원에 오면 여러 과를 전전하며 진료를 받느라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환자 중심이 아니라 의료 공급자 중심의 프로세스 때문이다. 송 원장은 “앞으로 철저히 환자 중심에서 생각하겠다”며 “여러 진료과가 진료특성화센터에 모여 환자에게 통합된 진료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향후 2년 안에 병원 전 분야로 확대·적용하겠다”고 말했다.

 셋째, ‘스마트 병원’ 만들기다. SF영화에서 볼 수 있는 첨단 IT와 BT를 융합해 병원 환경에 적용하는 스마트 병원을 2020년까지 현실화시킬 계획이다. 병원에 들어서면 곧바로 진료프로세스가 가동해 위치·검사 안내 등이 스마트폰을 통해 전달되고, 환자가 궁금해 하는 각종 동영상과 텍스트 안내데이터가 전송된다. 삼성의 첨단기술력이 뒷받침되면 실현 가능한 계획이라는 것이다. 송 원장은 “환자의 편의를 높이고 미래형 병원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넷째, 세계적 글로벌 메디컬 콤플렉스로의 성장이다. 송 원장은 “2020년까지 병원을 중심으로 하는 진료뿐 아니라 연구·교육·기업체가 망라된 바이오헬스케어 산업의 중심지로 성장시키겠다”고 말했다. 연구와 교육 공간을 현재보다 2배 이상 증가시켜 글로벌 경쟁력을 높인다는 것. 송 원장은 “메디컬 콤플렉스가 완성되면 융복합적 의과학 연구가 가능해져 국내 의료 경쟁력을 끌어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4년까지 양성자센터를 비롯한 첨단의료기기 R&D가 들어선다.

 송 원장은 병원장 취임 이후 외래 환자 수나 수술 건수로 드라이브를 건 적이 없다. 이는 환자 수 감소로 이어져 올 1월 8612명이었던 외래 환자는 2월 8364명, 3월 7920명으로 감소하고 있다. 짧은 시간에 환자를 봐야 하는 부담을 없애기 위해 의사들에게 적당한 하루 환자 수를 제출 받아 논의를 거쳐 업무량을 재조정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삼성서울병원의 새로운 시도가 과연 병원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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