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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모독 영화에 폭발한 중동의 反서방 시위… 현지 전문가 긴급 진단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14분짜리 영화 홍보 동영상이 이슬람권과 서방을 동시에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분노한 무슬림은 미국·영국·독일 등 서방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로켓 공격까지 감행했다. 33년 만에 미국대사가 사망하면서 서방 언론은 ‘제2의 9·11’이라며 강경 대응을 촉구한다. 또다시 불거진 서방과 이슬람의 충돌로 이슬람권과 ‘대화와 타협’을 추구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이슬람권 정책 기조가 ‘테러와의 전쟁’을 강화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중동의 반서방 시위를 둘러싼 갈등에 대해 14일 각각 다른 시각을 가진 두 명의 중동전문가 이야기를 전화로 들어봤다.

가장 악랄한 이슬람 모욕 도발 일삼는 서방 반성해야

요르단 무슬림형제단 셰이크 압둘 마지드 알두나이바트 최고위원

영화 ‘무슬림의 무지’ 홍보 동영상을 보는 순간 잠을 잘 수 없었다. 70 평생 살아오면서 가장 화가 나는 순간이었다. 예전에도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가 있었고 덴마크 신문의 마호메트 만평사태가 있었지만 이번 영화는 이슬람에 대한 역사상 가장 악독한 모욕을 담고 있다. 자기 종교의 지도자를 살인자, 동성연애자, 아동 성도착증 환자, 멍청이로 비하한다면 어느 누가 이를 참을 수 있겠는가.

특히 ‘마호메트(무함마드)’라고 자칭하는 배우가 실물로 공개된 것도 분노의 배경이다.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다’는 강력한 유일신 사상을 가진 이슬람은 마호메트의 얼굴도 그리지 않는다. 따라서 이슬람엔 성화조차 없다. 마호메트가 신성함을 가지지만 인간일 뿐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마호메트에 관한 영화가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모습은 등장하지 않고 목소리로만 그의 메시지가 묘사되곤 했다.

영화의 홍보 과정도 무슬림을 흥분시켰다. 제작자 바실은 지난 11일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슬람교는 암(cancer)과 같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코란(쿠란) 소각을 행한 테리 존스 목사가 동영상 홍보에 앞장섰다. 또 아랍어판을 만들었다는 것도 무슬림을 화나게 하려는 의도가 분명히 담겨 있는 영화다.
이번 사건은 이슬람을 비하하려는 서방의 장기적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그 중심엔 이스라엘이 있다. 팔레스타인 땅에서 주민들을 쫓아내고 후에 전쟁으로 요르단강 서안과 골란고원을 불법 점령하고 있는 유대인과 그들을 지지하는 서방인은 항상 이슬람을 야만성과 폭력성을 가진 비정상적인 종교라고 묘사해 왔다. 자신들의 영토 불법점령 상황을 정당화하기 위한 음모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대사관을 공격해 외교관을 살해하는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이슬람에선 무고한 시민을 살해하는 게 금기시된다. 폭력으로 우리가 서방과 맞서 싸워 이길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이슬람권에서 소위 ‘테러’가 발생한 시기는 십자군전쟁 200여 년과 19세기 이후 서방의 식민지화 이후 현재까지 200여 년이다. ‘침략과 전쟁’에 맞서 군사력이 약한 이슬람권이 택한 대응방식이었다. 이슬람은 폭력적이지 않다. 만약 그렇다면 1400여 년 이슬람 역사에서 왜 400여 년 동안에만 테러가 발생했겠는가.

이슬람에서 지하드(성전)는 방어적 개념이다. 침략을 당하면 이슬람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해 행하는 전투행위다. 그런데 21세기는 정보통신시대다. 꼭 칼이나 총이 아니더라도 영화·만평 등이 무기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질 수 있는 시대다. 적지 않은 무슬림은 이런 창작물들도 일종의 침략행위라고 간주할 수 있다. 특히 현재와 같이 이슬람권이 민주화를 향한 혁명과 내전에 빠져 있는 혼란한 상황에서 무슬림을 자극하는 것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

현재와 같은 충돌사태를 막기 위해선 이슬람권도 노력해야 하지만 서방의 자세도 분명히 바뀌어야 한다. 십자군전쟁 그리고 식민지화 모두 서방이 먼저 시작한 역사적 충돌이다. 이번 사태도 분명히 서방에 거주하는 유대인이 제작한 ‘분노 촉발용’ 영화 때문이었다. 9·11테러를 감행한 이들은 분명 이슬람권에서도 비난받는 테러세력이다. 하지만 이를 빌미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공격해 점령하는 것은 더 큰 범죄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공정히 해결하면 이슬람권의 반서방 감정은 과거보다 훨씬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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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둘 마지드 알두나이바트(68) ?변호사?요르단대 법학 박사 ?요르단인권변호인 협회 부회장 역임

‘아랍의 봄’ 반대 세력의 모략 오 바마 화해정책 흔들려선 안 돼

이집트의 중동 최대 싱크탱크 알아흐람 정치전략연구소 가말 술탄 소장

영화를 보고 흥분하지 않을 무슬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슬람에선 마호메트에 대해 불경스러운 언급을 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중동 출신 제작자인 샘 바실은 특히 이 부분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이 때문에 제작 동기와 시점이 의심스럽다. 튀니지·이집트·리비아·예멘 등이 이제 겨우 과거의 독재정권을 몰아내고 민주화로 나아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문명의 충돌을 집필한) 새뮤얼 헌팅턴 같은 서방 학자와 유대인 학자들은 그동안 이슬람은 민주화할 수 없다고 강조해 왔다. 그런데 그들의 주장이 아랍의 봄으로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들 학자는 중동이 민주화하는 것을 사실상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중동에서 또다시 혼란과 보복의 폭력사태를 야기하고자 한 것이 영화의 동기다. 더불어 이 영화는 이란의 핵 개발에 대해 이스라엘의 군사적 타격설이 등장한 지난해 제작됐다. 유대 강경파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신정일치’ 이슬람 국가 이란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하기 위한 영화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건 폭력으로 이에 맞서는 게 적절치 않다는 점이다. 이집트뿐만 아니라 리비아인 절대 다수는 미국대사의 사망을 애도하고 공격을 주도한 무장단체에 비난을 보내고 있다. 이 같은 민감한 반응이 바로 ‘무슬림의 무지’란 영화를 만든 과격세력이 노리는 결과다. 이슬람권과 서방이 화해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이들이다. 극소수의 이런 서방 세력에 이슬람권 전체가 흥분하는 것은 결국 보복의 악순환만 이어지게 할 것이다.

영화에 대한 반응이 폭력적으로 변한 것은 현재의 아랍 정치 상황과 맞물린다. 리비아·이집트·예멘 등은 정권교체 이후 혼란기에 있는 나라들이다. 중앙정부의 통제권이 지방 및 도심 거리에까지 확실하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구정권 지지세력들, 혼란을 틈타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과격 이슬람세력들, 여기에 범죄세력까지 판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리비아 사태는 반미세력이 시위를 이용해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사태 해결을 위해선 양측 간의 대화와 교류가 필요하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대이슬람권 화해’ 정책이 흔들려선 안 된다. 화해와 타협엔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불과 3년밖에 추진되지 못한 정책이다. 자국 국민과 시설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해병대를 파병하는 것 이상의 공격적인 정책이 실행돼선 안 된다.

이슬람권도 폭력적인 대응을 자제해야 한다. 이슬람의 어원은 평화다. 평화를 추구하는 종교사회에서 폭력사태가 자주 일어나는 것은 향후 또 다른 조롱과 비판을 야기할 뿐이다. 정부 차원에서도 민간인과 외교관의 사망에 대해 애도하는 게 우선적인 조치일 것이다. 그러고 나서 차분하게 미국 정부와 언론에 이번 사태에 대한 자체적인 대응을 촉구해야 할 것이다.

중동은 이제 민주화 여정의 걸음마를 시작했다. 아직 네 나라에 불과하지만 향후 다른 나라도 정치 개혁을 통해 민주화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개혁이 없다면 국민의 불만이 폭발하는 것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오일머니로 국민을 달래고 있는 걸프 산유국들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중동은 빠르게 변할 것이다. 국가의 정체성을 수립하고 이슬람의 가치와 자유주의의 가치를 접목하는 데 상당한 시행착오가 예상된다. 이런 과정에서 이슬람권을 모욕하기보다는 도와주려는 서방의 진정한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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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말 술탄(58) ?언론인 및 정치평론가 노스일리노이대 정치학 박사 ?카이로아메리칸대 정치학 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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