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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권은 모욕·조롱, 이슬람권은 시위·폭력으로 맞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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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호 03면

유대계 미국인 샘 바실이 제작한 ‘무슬림의 무지(Innocence of Muslims)’란 영화가 전 세계를 긴장케 하고 있다. 영화 제작의 동기와 과정은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 아랍 및 이슬람권과 각을 세우고 있는 유대인 100명으로부터 500만 달러(약 56억원)를 모금해 만든 영화다. 영화에 등장하는 이슬람의 창시자 마호메트는 얼간이, 동성애자, 살인자, 소아 성도착자 등으로 묘사된다. 이슬람의 예언자를 모욕하는 것은 중대 범죄이고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
시위는 폭력사태로 빠르게 바뀌었다. 가장 먼저 반미 시위가 시작된 이집트에선 미국대사관 난입 시도가 이어졌다. 대사관의 성조기가 내려져 찢기고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다’는 글귀가 적힌 검은 깃발로 바뀌었다.
리비아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미국대사를 포함한 4명의 외교관이 숨졌다. 예멘에서도 미국대사관 앞 시위로 한 명이 사망했다. 14일 금요일 합동예배를 끝내고 발생한 수단 및 레바논 시위 사태에서도 여러 명이 사망했다. 미국 대사관뿐만 아니라 영국·독일 등 서방 대사관으로도 시위는 확산됐다. 그리고 튀니지·이스라엘·모로코 등 중동 국가들과 더불어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국가,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 국가들에서도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서방과 이슬람권의 ‘조롱과 모욕’ vs ‘시위와 폭력’ 대립구도는 이미 익숙한 것이다. 2005년 9월에도 덴마크의 유력 일간지 윌란 포스텐에 실린 만평에 이슬람권이 발칵 뒤집혔다. 만평 속 마호메트는 폭탄을 터번처럼 머리에 두르고 있었다. 만평 사태는 100여 명이 목숨을 잃은 뒤에야 겨우 진정됐다.
지난해 3월 미국인 목사 테리 존스가 이슬람 경전인 코란을 불태웠을 때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등 10여 명이 살해됐다. 1989년 영국의 소설가 살만 루슈디는 마호메트가 사탄의 유혹을 받아 코란의 한 절을 붙였다는 내용의 악마의 시라는 소설을 발표해 당시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호메이니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았다. 이런 모욕과 폭력 대립구도는 계속 반복돼 왔다. 하지만 단기간의 충돌로 항상 마무리돼 왔다. 폭력사태가 장기화하지는 않았다. 다만 상호 감정의 상처가 앙금으로 남아 쌓이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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