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시 라이엇’, 푸틴을 위한 변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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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호 30면

이슬람권과 서방을 충격으로 몰아가는 14분짜리 영화 ‘무슬림의 무지’가 낳은 폭력사태를 보면서 러시아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지난 6일 블라디보스토크에 있을 때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TV 뉴스쇼 ‘러시아 투데이’에 출연해 사회자 오언과 ‘약간의 설전’을 벌인다. 밋밋하던 대담은 ‘푸시 라이엇’으로 확 달아올랐다. 푸시 라이엇은 지난 2월 모스크바 정교회 성당에서 ‘반(反)푸틴’ 막춤 퍼포먼스를 하다 체포된 페미니스트 펑크 그룹. 최근 2년형을 선고받아 푸틴 독재를 비판하는 단골 소재로 급부상했다.

안성규 칼럼

-오언 “2년은 너무한 거 아닙니까. 텅 빈 곳에서 했던데….”
-푸틴(낮은 목소리로) “그럼, 푸시 라이엇을 러시아어로 번역해 보렵니까.”
-오언(약간 당황하며) “잘 모르겠는데….”
-푸틴 “뭔가 좀 꺼림칙해서 못한다는 거죠. 하기야 영어 뜻이 좀 그렇지요… 얼마나 상스럽습니까.”

TV방송에선 정답을 안 알려줘서 기자는 현지와 서울의 러시아인들에게 물었다. 라이엇은 반란이란 뜻이지만 ‘푸시’가 문제였다. 다들 ‘그게 러시아어가 아니며 여성 성기를 뜻하는 원색적 영어’라고 했다. 푸시 라이엇이 영어로 뭘 의미하든 보통 러시아인에겐 ‘의 반란’이란 상소리로 들린다. 푸틴은 “푸시 라이엇은 공공장소에서 그룹 섹스를 벌이고 인터넷에 올렸어요. 법적 문제도 있지요. 한 성당에서 소란을 떨더니 다른 성당에서 또 그랬습니다… 정부는 믿는 이들도 보호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정교회가 강한 사회다. 사회주의 시절 성당은 폐쇄됐지만 정교회는 지하에서 70여 년을 버티다 부활했다. 1952년 푸틴의 어머니 마리아가 늦둥이 외아들 푸틴을 세례받게 했을 때 당 조직의 비서였던 남편은 모른 척했을 정도다. 지금도 평일이든 휴일이든, 남녀노소에 관계없이 정교회의 장중한 분위기에 잠긴다. 그러니 최고 성소인 모스크바 그리스도 구세주 성당에서 벌어진 신성 모독 행위를 예술로만 받아들이긴 어렵다.

‘무슬림의 무지’란 영화도 그렇지 않은가. 감독은 예술의 자유란 이름으로 특정 종교를 모독하는 창작을 했지만 이슬람 사회는 그 대가를 확실하게 묻고 있다. 그러니 하필 여성 성기로 작명한 젊은 여성 그룹이 정교회에서 예술의 이름으로 반푸틴 구호를 외치고 막춤의 자유를 누린 데 대해 러시아 사회가 책임을 묻는 것은 자연스럽다.

영화 ‘무슬림의 무지’에선 예언자 마호메트(무함마드)가 아랫도리를 벗은 여인의 허벅지에 얼굴을 묻고, ‘악마가 보인다’고 외치고, 당나귀를 가리켜 ‘첫 이슬람 신자네’라고 말한다. 물론 반(反)이슬람의 독기와 정교회 성당의 기습 전위예술이 다르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또 ‘펑크들의 기습 쇼는 40초이고 영화는 14분이라서 질적으로 다르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둘의 공통점은 그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상식의 한계를 넘어서서 상대의 핵심 가치를 훼손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신성 모독으로 비난받고 평화를 깬 행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선지 ‘푸시 라이엇’을 정치 문제가 아닌 ‘자유와 법적 책임’의 각도에서 보는 푸틴의 시각에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서방 세계와 푸틴의 비판자들은 푸시 라이엇에 대한 2년형 선고를 독재의 단면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지난 1000년 동안 사람들은 차르 체제 아래서 신음했고 공산혁명 역시 ‘서기장 차르’의 등장일 뿐이었다. 러시아 사회는 아직 권위를 중시한다. 러시아는 북한처럼 폐쇄사회도 아닐뿐더러 비밀·자유 투표를 하는 나라다. 그렇게 탄생된 푸틴 체제를 ‘독재’라고 싸잡아 비난하기엔 뭔가 찜찜하다. 여기엔 정교회, 서구와 러시아를 달리 보는 슬라브주의도 엉켜 있다. 그래서 ‘푸시 라이엇’ 사태에 서구식 잣대만 들이댄다면 그건 너무 단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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