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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농촌을 아느냐, 만화 『은수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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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나이를 먹어 간다는 증거일까. 주변에 ‘귀농(歸農)’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회사 생활 틈틈이 귀농 교육을 받고 있다는 고등학교 동창에서부터, 제주도에서 말을 키우고 살겠다는 꿈을 진지하게 털어놓는 친구까지. 이런 세태를 반영한 듯 최근 귀농과 시골생활을 주제로 한 만화들이 속속 출간되고 있다. 국내 작품으로는 최민호의 『텃밭』(거북이북스), 홍연식의 『불편하고 행복하게』(재미주의) 등이 있다.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고 있는 작품은 일본 작가 아라카와 히로무의 『은수저(Silver Spoon)』다. 일본 홋카이도에 있는 한 농업고등학교 학생들의 ‘빡센’ 학창 생활을 그린 만화다.

 주인공은 도시에서의 치열한 입시경쟁으로 녹초가 된 소년 하이켄 유고. 그저 ‘집을 떠나고 싶다’는 마음에 기숙사가 있는 오오에조 농업고등학교에 진학한다. 대자연을 즐기면서 천천히 미래를 구상해보자는 기대였지만, 농고에서의 생활은 그런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광활한 부지를 일궈 농장을 운영하는 이 학교에서 학생들은 그저 ‘젊은 일꾼들’일 뿐. 하이켄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농사일의 어마어마한 노동 강도에 놀라고, 귀여운 아기 돼지에게 ‘돼지덮밥’이라는 이름을 붙여버리는 친구들의 잔인함(?)에 충격 받는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조금씩 배워 간다.

만화 『은수저』(학산문화사) 1권 표지.

 농업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은 일본도 한국과 비슷하다. 이런 분위기와 맞물려 젊은 농업인을 주인공으로 한 이 만화는 출간과 함께 화제가 됐다. 3권까지의 판매 부수가 일본 내에서만 250만 부를 돌파했고, ‘2012 일본 만화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작가 아라카와 히로무는 1000만 부가 넘게 팔린 인기만화 ‘강철의 연금술사’를 그린 여성 만화가. 실제로도 농고를 졸업했고, 만화가로 데뷔하기 전까지 7년여간 홋카이도에서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왔다 한다.

 같은 작가의 자전적 농사 에세이 『백성귀족』(세미콜론)과 함께 읽으면 더 흥미롭다. 백성(일본어로 ‘햐쿠쇼’)은 일본에서 근대 이전까지 농업에 종사하는 계층을 일컫던 말. 백성은 백성인데, 감자도 무도 호박도 배추도 돈 내고 사 먹어본 적 없으니 사실상 ‘백성의 탈을 쓴 귀족’이 아니냐는 의미에서 ‘백성귀족’이다. “시골에 살면 동물들과 함께 지낼 수 있어 좋잖아”라는 도시인에게 “소한테 명치를 걷어차여 보면 그런 말 못하지”라고 펀치를 먹이는 통쾌한 개그만화. 아련한 눈빛으로 “자연을 느끼며 살고 싶어” 하는 친구들에게 한 권씩 선물해 줄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