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공장’ 된 우수리스크 합작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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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4일 북쪽으로 자동차를 타고 한 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우수리스크.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와 중국 하얼빈행(行) 철도가 지나는 교통의 요지다. 시내 ‘중국경제무역합작구’에 들어서자 바깥에서 본 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오가는 사람은 검은 머리의 동양인뿐이고 모두 중국어로 대화하고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1400여 명의 근로자 대부분이 이웃 저장(浙江)·헤이룽장(黑龍江) 등에서 건너온 중국인이다. 중국의 ‘세계 공장’이 러시아에 둥지를 튼 것이다.

 공단 관리회사인 캉지(康吉)그룹의 장룽쉐(姜龍學) 본부장은 “이곳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대부분 모스크바 등 러시아 시장에서 판매된다”며 “중국에서 반제품을 들여와 이곳에서 가공해 우랄산맥 건너 모스크바와 유럽으로 보낸다”고 설명했다. 유통 역시 중국인들의 손에 의해 이뤄진다. 제품은 모스크바·로마·파리 등에 포진하고 있는 화교 네트워크를 타고 이동된다. 차이나 생산 유통망이 극동에서 시베리아를 넘어 유럽까지 뻗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이곳 중국인 근로자가 한 달 받아가는 급여는 4000위안(약 70만원)가량. 이웃 중국 헤이룽장성의 동종 업계에 비해 약 1000위안 높은 수준이지만 보험 등 간접비용이 없어 오히려 인건비를 절약할 수 있다. 공단 직원 중에는 북한인도 68명 포함돼 있다. 내년에는 400여 명이 더 들어올 계획이라고 한다. 또 다른 공단 관계자는 “북한 노동자들은 중국 직원에 비해 급여는 약간 낮지만 솜씨는 오히려 뛰어나다”며 “내년 들어올 북한인 근로자 중에는 개성공단 출신 인력도 50명 포함된다”고 말했다. 중국·러시아·북한의 합작 사업이 이뤄지는 셈이다.

 공단 한쪽에는 새 공장 건설 공사가 한창이다. 러시아와 유럽시장 공략에 유리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입주 희망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새로 들어오는 공장 중에는 휴대전화 조립, 조명 기구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신발과 봉제 등 1세대 경공업에서 벗어나 부가가치가 높은 제조업까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장 본부장은 “이런 속도로 가면 3~4년 안에 228만㎡에 달하는 전체 부지에 공장이 꽉 차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 공단 내 25개 업체가 거둔 매출액은 20억 위안(약 3500억원)가량, 순이익은 3억 위안에 달했다.

 그러나 주변 러시아인의 시선이 고운 것만은 아니다. 고용 효과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 사회과학원 극동지부의 빅토르 라린 박사는 “중국 근로자까지 데려와 사업을 하는 중국 기업들은 지역경제에 기여하는 게 별로 없다”며 “러시아 당국도 이런 현상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 안성규 CIS순회특파원, 한우덕 중국연구소장, 심상형 POSRI 수석연구원, 김형수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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