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상 담긴 추석선물 70년대 설탕·조미료 올해는 ‘힐링’이 대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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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표 ‘그래-뉴 설탕’ 6㎏에 780원, 30㎏에 3900원. 1960년대 백화점서 가장 많이 팔렸던 추석 선물세트다. 생필품이었지만 서민이 선뜻 사들이기 어려웠던 설탕의 위상을 알 수 있다.

 신세계백화점 상업사 박물관이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백화점 추석선물 카탈로그와 판매실적 등을 토대로 시대별 인기 추석선물을 정리했다. 배봉균 상업사 박물관 관장은 “TV·세탁비누·스타킹 등 한때 고급 선물로 인기를 끌었던 제품들이 대중화되면서 선물세트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명멸을 겪었다”고 말했다. 배 관장은 “한국 경제가 50여 년 만에 빠르게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1960년대 백화점에서는 추석선물세트라는 개념이 처음 나왔다. 추석선물 신문광고도 처음 실렸고, 1장짜리 추석선물 카탈로그가 등장했다. 라면 50개입 한 상자는 500원, 맥주 한 상자는 2000원에 팔렸다. 식생활마저 제대로 해결하기 힘들었던 당시 한국 상황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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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년대엔 산업화가 본격화되며 추석선물세트 종류도 60년대의 100여 종에서 1000여 종으로 대폭 늘었다. 다이알 세수비누, 화장품 세트, 스타킹, 치약 등이 고급 선물세트로 등장했다. 76년에는 ‘선물의 새 아이디어’란 홍보 문구를 내세운 12인치 흑백 TV가 6만5700원에 추석선물로 팔리기도 했다. 동서 맥스웰 커피세트가 매출로 설탕과 조미료에 이어 3위를 차지하는 등 기호품이 추석선물로 보편화됐다.

 60년대가 식품, 70년대가 기초 공산품이 선물로 나온 시기였다면 80년대는 포장과 고급화의 시기로 볼 수 있다. 70년대엔 2만원 미만이면 구매가 가능하던 고급 선물세트가 포장이 고급스러워지고, 질도 높아지면서 10만원대까지 가격이 올랐다. 정육과 고급 과일 선물세트가 백화점 추석선물의 주류로 자리 잡은 것도 이때쯤이다. 선물 종류도 3000여 종으로 크게 늘었다. 70년대의 3배로 늘어난 것이다. 넥타이와 지갑·벨트세트 같은 잡화 용품이 크게 늘어난 것도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이 시기의 특징이다. 참치통조림 등 대량생산 규격 식품도 이 시기에 선물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1990년대. 사회적으로 양극화가 본격화하던 시기다. 선물세트에서도 이런 흐름이 보인다. 1994년 백화점 상품권 규제가 풀리면서 상품권은 90년대 가장 대중화된 추석선물 중 하나로 자리를 굳혔다. 93년에 대형마트가 첫 등장하며 고급 선물은 백화점, 중저가 실용선물은 대형마트에서 사는 행태가 보편화됐다. 130만원이 넘는 레미마틴 코냑, 루이13세 위스키와 100만원이 넘는 영광 굴비 등 호화 선물이 논란 속에서 팔리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2000년대엔 위스키를 제치고 와인 세트가 추석선물 주류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갈비 세트나 정육 세트를 냉동보다 냉장으로 팔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남북 화해 무드가 본격화되며 북한산 식품을 세트로 구성한 ‘통일 차례상 모음세트1호(12만5000원)’ 등도 선보였다.

 ◆경기침체 여파 저가세트 크게 늘어

웰빙에 이어 건강과 치유까지 생각하는 힐링이 올해 선물의 대세다. 현미에 잘게 썬 솔잎을 섞은 효소, 간의 피로를 풀어준다는 ‘구관모 식초’ 등이다.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것 같은 전 세트도 나왔다. 원하는 만큼의 배와 사과를 골라 담거나, 외국산 식료품을 종류별로 담을 수 있는 햄퍼(바구니) 선물세트도 등장했다. 전복 값이 오르자 반건조전복세트(25만원)도 인기다. 경기 침체 여파에 선물을 꼭 해야 하지만 개별 액수는 대폭 줄인 기업들을 위해 대형마트들은 7000~8000원대 세트 물량을 30% 늘렸다. 백화점들도 5만원대 이하 선물을 크게 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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