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적인 성범죄 대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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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호 18면

‘99년 대(對) 12년’
한국과 미국의 특정 성범죄 형량 차이다. 얼마 전 미국 오하이오주(州) 집단 성폭행 사건 피의자는 99년 형을,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조두순은 12년 형을 선고받았다. 우리 사회를 패닉에 빠뜨린 성범죄의 판결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성범죄는 높은 형량으로 다스리는 게 옳다고 주장해왔다. 성중독이나 성범죄, 성도착증 환자들을 치료해온 입장에서 그들을 최대한 인격체로 대하고 사회로 복귀시키는 일을 해왔지만, 성범죄 자체는 엄한 처벌이 옳다. 그나마 무거운 형벌이 초범이나 재범률을 낮추는 억제효과가 있기에 다른 선진국들도 엄한 처벌을 택한다. 더 기막힌 일은 국내에서 형사 보고된 성범죄만 하루에 50여 건, 1년에 무려 2만 건에 육박하는데, 최근까지도 성범죄자의 절반 이상이 집행유예로 풀려났다는 것은 걱정스럽다.

부부의사가 쓰는 性칼럼

성범죄에 대한 한국의 논쟁은 신상공개→전자발찌 부착→화학적 거세 순으로 진화했고 심지어 물리적 거세까지 대두했다. 어쨌든 가벼운 처벌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미국에서도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한 ‘메건법’부터 시작해 좀 더 강한 처벌과 화학적 거세 등의 시대별 흐름이 있었다.
최근 화학적 거세에 쏠린 국민적 관심과 사법적 요구를 보면서 필자는 이 현상이 몇 년 전 성범죄자의 전자발찌에 걸었던 기대의 재탕인 것 같아 몹시 씁쓸하다. 급기야 전자발찌를 낀 성범죄자의 재범까지 잇따라 발생했으니 말이다.

화학적 거세는 심각하고 재발위험성이 높은 성범죄자에게 좋은 예방책이 될 수 있고 실제 외국의 사례에서도 상당한 효과가 입증되었다. 하지만 이는 최후의 선택수단이 돼야 하고, 대다수의 성범죄자에게 적용할 방법은 못 된다고 본다. 화학적 거세의 효과는 성충동의 저하이지, 비뚤어진 성도착 패턴까지 막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성욕은 단순히 호르몬 작용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어서 거세 상태에서도 강력한 심리적 충동과 변태적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

성범죄나 성도착은 폭력처럼 단계별로 악화되는 경향이 있다. 올바른 성범죄 방지 대책은 다양한 방법들을 아래와 같은 원칙에 맞춰 적용해야 한다.
먼저 가해자보다 피해자의 인권과 피해를 우선하는 것이 원칙 중의 원칙이다. 강력한 처벌에 따른 강제적 억제력, 성도착적 음란물에 대한 규제, 성을 소중히 여기는 올바른 성교육, 비뚤어진 성충동과 성취향에 대한 교정, 취약한 인간관계와 정서적 안정을 위한 심리치료, 건강한 성으로의 복귀를 위한 재활 성치료, 성충동을 조절하는 각종 약물치료, 전자발찌 등의 행동치료, 그래도 안 될 때는 최후의 수단인 화학적 거세 등 사안에 따라 체계적이고 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솜방망이 처벌에 우왕좌왕하다가 뜬금없이 화학적 거세라는 최후의 방법이 최선이라고 여기는 것은 단순하고도 극단적인 대처다. 앞서 언급한 각종 대처법을 두고 치료자, 일반인, 법률가, 행정기관이 성범죄에 유기적으로 협조해야 한다. 그렇게 장기적으로 체계를 갖춰갈 때 성범죄는 서서히 고개를 숙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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