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경제체제, 이대로 지속될 것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9면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

제2차 세계대전 후 약 30년간이 미국 중산층에는 가장 좋은 시대였다고 한다. 실질소득이 매년 평균 2% 증가해 30년 만에 약 두 배가 됐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 이후 미국 중산층의 소득은 정체돼 2010년까지 약 40년간 실질소득이 겨우 10% 증가하는 데 그쳤다.

 반면 이 기간 중 상위 1%의 소득은 세 배로 증가했다. 73년 미국 최고경영자의 평균소득은 중위 소득자의 23배였으나 2010년에는 이것이 300배로 늘었다. 단순히 소득분배뿐 아니라 세대 간 계층의 이동성도 크게 악화됐다. 2년 전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특집을 통해 ‘아메리칸 드림’은 이제 끝났다고 했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면 평생을 가난하게 살 확률이 크게 높아진 것이다.

 한국도 1960년대 이후 약 30년간 중산층이 빠르게 형성, 발전했고 이들의 소득이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소득격차와 계층 간 이동은 70년대 중반 이후 미국의 패턴을 닮아가고 있다. 경제정책의 틀도 그러했다.

 대개 산업혁명 후 20세기 초반까지의 자본주의를 ‘고전적 자본주의’라고 부른다. 대영제국이 자유주의 경제철학과 시장제도로 세계경제, 무역질서를 주도했던 시절이다. 그러나 이는 곧 공산주의 혁명과 세계 대공황의 벽에 부딪히게 된다. 30년대 이후 서유럽뿐 아니라 미국, 일본의 경제제도는 시장, 특히 금융·외환시장에 대한 강력한 규제와 정부 역할의 확대, 복지국가의 길을 추구했다.

 국가에 따라 최고 소득세율이 70~90%를 넘나들기도 했다. 이것이 70년대 말 이후 다시 감세, 규제완화, 개방, 민영화 등으로 반전돼온 것이다. 마거릿 대처가 집권할 당시 영국 최고세율은 83%, 레이건이 집권할 당시 미국 최고세율은 70%였다.

 지금 세계는 경제체제의 불안정과 경기침체의 장기화라는 두 난제를 동시에 맞고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국제 공조에 의한 전대미문의 팽창적 재정, 금융정책으로 대공황은 피했지만 장기침체는 피할 수 없게 됐다. 재정도 바닥이 드러났다. 지금 세계경제의 앞날은 매우 불투명하고 다시 회복기에 접어들기까지 어떤 경로를 밟아가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경제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이다. 산이 높았으니, 골이 깊거나 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장기침체는 향후 각국의 경제사회 체제에 심대한 변화의 압력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도드-프랭크(Dodd-Frank)법안의 도입 등으로 금융규제를 강화해 왔다. 정치와 여론은 금융계의 부도덕성과 탐욕을 질타해 왔다. 그러나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며 다시 반전이 일어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보수적 언론은 최근 반(反)금융계 정서, 규제강화가 투자심리를 위축시키고 신용경색을 장기화해 실업을 늘리고 경기회복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반격에 나섰다. 영국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 4년간 일방적으로 몰리던 런던 금융계가 경기침체의 심화와 더불어 반격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70년대 중반 이후의 미국경제, 90년대 중반 이후의 한국경제 추세는 결코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 체제라고 할 수 없다. 로버트 라이시 교수는 1928년과 2007년 각각 미국의 상위 1%의 부가 전체 부의 23%에 이르면서 결국 경제사회의 위기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70년대 이 비율은 8%로 내려갔었다.

 지금의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어떻게 바꾸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세계는 아직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미국과 유럽의 정치인들은 ‘변화와 희망’을, 국내 정치인들은 ‘경제민주화’를 외치고 있지만 아직 모호한 구호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한편으로 경기침체의 심화, 장기화와 더불어 금융계, 재계의 반격은 시작되고 있으며 낯설지 않은 이 풍경을 바라보면서 어느 쪽의 힘이 향후 세계 경제질서의 20~30년을 주도하게 될지 몹시 궁금해진다.

 경제체제, 경제정책의 틀은 결국 정치적 과정을 통해 정해진다. 오늘날과 같은 대중민주주의 제도하에서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가 어떻게 변할지, 혹은 과연 변할 수 있을지 낙관하기 어렵다. 정치 지도자의 시계는 극히 짧으며 금권이 여론과 정치를 주도할 수 있다는 것을 익숙히 봐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으면 그 결말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는 비교적 쉽게 예측할 수 있다. 17~18세기 민중의 의식이 계몽되면서 영국의 귀족계급은 민중에게 특권을 양보하면서 체제를 지켰다. 그러나 프랑스의 왕과 귀족계급은 이를 거부함으로써 결국 ‘구체제’의 붕괴를 맞게 됐다.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