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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생활기록부에 폭력 기록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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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한유경
이화여대 교수·교육학
학교폭력예방연구소장

우리나라에서 학교폭력은 문제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온정주의적 시각이 대부분이었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성장통의 하나라고 인식하기도 하고, 애들은 싸우면서 자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올해 들어서야 사소한 괴롭힘도 폭력이고, 피해 학생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범죄라는 사회적 담론이 어느 정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는 우리나라 학교문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학교폭력 관련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은 가해사실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느냐 여부다. 정부 차원에선 지난 2월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이 대목을 넣었다. 학교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높일 수 있고 이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관점이다. 정책 발표 전인 1월에 정부가 한국교육개발원에 의뢰해 학교폭력 가해 사실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 것이 그 근절에 도움이 될 것인지를 설문조사했다. 그 결과 학교장과 교감의 86.6%, 학부모의 81.2%, 교사의 79.9%, 일반국민의 78.2%, 학생의 68.9%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그런데 8월 3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학교폭력 기록에 대해 졸업 전 삭제 또는 중간삭제 등을 도입할 것을 권고하면서 뜨거운 이슈로 부각됐다. 담당 부처인 교육과학기술부는 인권위에 즉각 불수용 의견을 통보했으나 4개 교육청에서 교육과학기술부의 방침과 다른 입장을 보임으로써 중앙과 지방정부의 다툼으로 비화하고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학교폭력 상황은 소수의 가해학생, 피해학생의 문제가 아니라 학교 전체의 문제다.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의 주변에는 이를 지켜보는 대다수 주변인이 존재한다. 주변인은 동조자·강화자·방관자·방어자 등 4가지 하위 집단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동조자와 강화자는 가해학생을 돕는 집단이다. 방관자는 무관심한 집단, 방어자는 피해학생을 돕는 집단이다. 2010년 이화여대 오인수 교수의 초등학생 대상 연구에 의하면 동조자는 7.4%, 강화자는 6.0%, 방관자는 41.0%, 방어자는 45.6%에 해당한다.

 이화여대 연구팀에서 8월 9일부터 22일까지 2주간 전국 초·중·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학생들의 학교폭력 상황과 유사하게 나타났다. 학생의 63.7%는 학교폭력 가해사실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 것이 학교폭력 예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반면 학교폭력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응답은 9.4%로 나타났다.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에 부정적인 응답을 한 학생의 비율은 가해학생과 이에 동조하는 학생의 비율과 거의 유사하게 나타났다. 대다수 학생은 가해학생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 설문결과는 그러한 소망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처럼 학생들이 왜 학교생활기록부 기재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지를 헤아려야 한다. 학교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 가해 사실을 기재하는 데 대한 학교현장의 어려움은 새로운 제도의 안착을 위해서는 반드시 겪어야 할 성장통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는 학교폭력 가해학생에 대한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자체를 문제삼고 있지 않다.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된 사실만으로 영원히 문제아로 인식되는 낙인 효과는 줄이자는 취지로 이해된다. 가해학생의 인권도 보호되고 존중돼야 하기 때문에 이 부분은 다 같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소수의 인권과 다수의 인권이 충돌되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다수의 인권을 위해 폭력 사실은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해야 한다.

한유경 이화여대 교수·교육학 학교폭력예방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