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통합의지 아쉬운 이해찬 대표 연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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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대선을 앞둔 제1야당은 국민에게 수권(受權)능력과 통합역량을 동시에 보여줘야 한다. 특히 통합역량은 소수당이 집권한 뒤 나라를 안정적으로 경영하기 위해 다른 반쪽 세력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에서 간과되기 쉽지만 검증받아야 할 항목이다. 어제 있었던 민주당 이해찬 대표의 국회연설은 수권능력을 나름대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었다. 그는 “전 세계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전환을 맞이하고 있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가 한계에 봉착했다. 저소득·고성장 시대의 사고방식이나 원칙은 앞으로 닥칠 고소득·저성장 시대에 대비해 크게 혁신되어야 한다”는 상황 인식을 제시했다. 이런 인식은 방법론의 차이는 있으나 경제 민주화·일자리 창출·한국형 복지의 3대 과제를 내세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기본 시각과 큰 틀에서 다르지 않다. 여야 지도자의 생각의 틀이 성장지상주의에서 벗어나 국민 눈높이의 생활 중심으로 수렴되는 데서 5년 전과 확 달라진 시대정신의 변화가 읽혀진다.

 이해찬 대표가 민주당이 집권하면 일자리 정책을 전담할 경제부총리를 신설하고, 중소기업청을 중소기업부로 승격하겠다는 제안은 내수와 일자리를 강력하게 이끌 기구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검토할 만하다. 국민 참여형 치안대책이란 개념 아래 전·의경 제도를 폐지하고, 지역공동체 정신을 육성하기 위해 380만 명 민방위제도를 전면 개편하겠다는 구상들은 시대 변화에 맞는 사회제도 개편안으로 토론할 가치가 있다.

 문제는 이런 수권 구상을 뒷받침할 자기 반성, 반대세력의 포용 같은 통합역량이 미흡하다는 점이다. 이 대표의 연설 곳곳에서 상대 세력에 대한 비방과 존재 부정에까지 이르는 언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민주당을 상대로 진행되고 있는 48억원 규모의 공천비리 의혹사건 수사에 대해 이 대표는 한마디 반성이나 사과 없이 “정치검찰과 수구언론의 민주당을 향한 칼춤이 계속되고 있다”는 등 비난 일변도 주장만 폈다. 국가 목표를 이뤄내기 위해 악마와도 손을 잡을 수 있는 게 정치다. 수권세력을 자임하는 이해찬 대표는 자신들이 그리는 청사진을 완성하기 위해서라도 비판세력을 포용하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집권해도 반쪽짜리 통치만 하면 보람이 없지 않겠는가.